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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맞는 비

박순진 2011년 06월 17일 금요일
   
▲ 박순진

성공회 신부·춘천지역자활센터장
비가 마구 쏟아지던 어느 늦은 밤이었습니다.

“신부님, 불이 켜 있는 걸 보고 그냥 들어왔어요. 괜찮지요?”

저녁 산책을 나왔다가 갑자기 비를 맞게 되었다며 제 앞에 서서 미소짓고 계신 분은 조그마한 회사의 대표님입니다. 일자리를 조합원들에게 주고는 있는데 막상 이익이 적다보니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한숨을 푹 내쉽니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제 마음을 쓸고 갑니다.

“밤에 잠을 못 주무시겠어요.”

“예”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시는데 뭐라 위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오랫동안 하다가 집으로 가겠다고 하시는데 바깥엔 아직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잠깐 기다리세요. 제 우산 빌려 드릴게요.”

그런데 우산을 찾아 들고 왔지만 대표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그냥 걷고 싶어요’라는 말씀이 떠올라 제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바깥은 캄캄하고 비마저 오는데 이 일을 어쩌나….

선한 일들을 하지만 웬일인지 좋은 일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남들처럼 똑똑하지 못해서 그런가, 백이 없어 그런가, 돈이 없어 그런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겠지요. 어렵고 힘든 일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을 때 행복 대신 어둠이 우리 마음을 휩싸고 맙니다. 좀 능력이 있다면 학연, 지연, 재력을 동원해서 해결하면 좋은데 현실이 이미 그렇지 않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정호승 시인 ‘수선화에게’ 중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할 수 없을 땐 그냥 걸어가는 수밖에 없지요. 안타깝지만 대표님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어떤 신비한 일이 벌어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겪는 일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소박하게 바랄 뿐이지요. 그것은 누구나 원하는 최소한의 것이고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주위에서 부어주어야 할 희망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합니다. 슬픔 속에서도 평소 관심 갖지 못했던 것을 보며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어둔 길에서 만난 사람이 길벗이 되듯 빗물 속의 눈물이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을 내놓기 쉽고, 지나간 일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로 마음이 분주할 때도 행복을 놓치기 쉽습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마음을 빼앗길 때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끼지요. 잠시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크게 숨을 쉬어 봅시다. 그리고 모니터와 서류에 집착해 있는 눈길을 창 너머로 또는 예쁜 사진으로 옮겨봅시다. 잠시 여유를 갖고 보이는 것에 마음을 열고 느껴봅시다. 잠시라도 그렇게 온전히 머물게 된다면 행복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갑자기 맞는 비 속에서도 걱정을 뒤로하고, 현재에 마음을 열고 비를 느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십시오. 따스한 마음이 샘솟으며 힘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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