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석환

원주 대광침례교회 목사
지독한 가뭄 끝에 맞은 장마다. 어제까지 말랐던 개울에 물이 넘치고, 사경을 헤매던 올챙이들이 활력이 넘치는 몸짓으로 물가를 누빈다. 말라가던 어린 매실나무의 잎들도 보톡스 시술이라도 받은 듯 팽팽해졌다. 목말라하던 생물들에게 필요한 약간의 물을 갈구하던 대지 위에 내린, 때 이른 장맛비는 분에 넘치는 뜻밖의 시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이 시점에서는 잇달아 다가오고 있는 태풍의 소식마저 두려움보다는 찌는 대낮의 한 줄기 소나기에 거는 신선함의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일찍 찾아온 이 장마의 계절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잔인했던 전쟁의 기억이다. 엊그제 61주년을 맞은 6·25 동족간의 전쟁은 참담했다. 성인의 하루 노임으로는 4인 가족 하루의 양식도 구입하기 힘들던 그 시대의 삶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마땅히 그 비참했던 정황을 설명할 적절한 언어가 있을까?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시절 이 땅에는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대학의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가난의 되물림을 끊을 유일한 희망은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 이른바 출세를 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자녀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던 시절, 당시로서는 국민의 직업 구성비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업인들이 농사에 필수적이던 농우까지 팔아 자녀의 학비를 충당하던 때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대학 등록금의 중압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지금 이 나라의 주된 화두는 역시 대학의 ‘반값 등록금’인 것 같다. 시간마다 전해오는 뉴스의 지속적인 보도 내용도 그렇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뺄 수 없는 의제도‘반값 등록금’이다. 삭발까지 하며 거리에 나선 학생들이나 그 지지자들의 주장도, 대학이나 정부의 주장도 어느 한 쪽이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외자의 눈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에서 모든 여건을 고려한 최선의 해결책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 최선책을 도출하기 위한 서로의 진정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접근하는 당사자들의 옷깃에서, 다가오는 총선이나 대선을 의식한 생색의 짙은 냄새가 배어나고 있는 것은 비단 나만의 예민한 생리적 현상일까? 이미 이 문제는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국민 앞에 다짐한 공약의 하나였다. 대선이나 총선에서 내건 공약을 그 뒤의 사정변경을 이유로 번복하는 이 땅의 정치 행태는 이쯤에서 막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평등하다고 한다. 개인의 능력차로 인하여 결승 지점에서의 등위가 차별화로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출발선에서는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평등이라면, 이 땅의 현실에서는 그 출발선이 대학 교육의 원만한 수행이 되어야 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이 땅의 국민은, 경제적인 사정이 대학 학업의 장애가 되는 일에서는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지금 이 땅의 대학가는 지독한 가뭄이다. 요 며칠의 장마까지는 아니어도 한 줄기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