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승노

화천 늘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행운과 행복의 상징으로 동화 속에 자주 등장하고 누구나 한 번쯤 잡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텃새 중에 파랑새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새는 아니지만 ‘파랑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인간의 행복이기 때문이리라. 실은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언제 손에 잡히게 될지도 모르면서도 파랑새를 떠올리면 왠지 기분이 좋다. 그런 파랑새가 내게 있어서는 장학금으로 연상이 된다.

1960년대 초에 ‘파랑새 장학금’을 지급한 기관이 있었다. 춘천경찰서였다. 당시에 국산 담배 중에 ‘파랑새’가 있었는데 그 때의 담배 중에서는 아마도 최저가의 담배이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당시 춘천경찰서 직원들이 한 달에 하루를 파랑새로 바꿔 흡연을 하고, 남은 돈을 모아 지급된 장학금이 <파랑새 장학금>이라고 했다.

그 장학금을 나의 친구 N이 일 년 인가를 받아 수혜를 보았다. 당시에는 여관과 중국집에서 일하거나 사상계와 새 벗 등의 책을 가판해서든지 아니면 가정교사로 학비를 조달하던 터라 그 장학금은 N에게 있어 꽤나 요긴하고 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을 받을 실력이 없었던 나로서는 선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퍽이나 부러웠다. N과 나는 서로 형편이 유사해서 남달리 친한 사이였다. 동병상인으로 고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과 일찍이 편부 편모아래 있었던 것 때문에 정상적인 중학교 과정을 밟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통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계속해서 학비를 일하여 조달하며 수학해야 했던 것 등이 그랬다. N은 머리가 좋고 근면했으며 인내심이 강했다. 그래서 장래가 총망 되었고, 그것을 인정받아 파랑새 장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금액으로는 얼마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장학금을 받는 N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N은 그 후 S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언론·문학 분야에 종사하며 지역발전을 위해서 적지 않은 활동과 기여를 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N이 잠시 받았던 그 ‘파랑새 장학금’은 내가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 내내 무슨 꼬리표같이 나를 따라 다녔다. 그래서 사치하지 아니하고 절제하고 분수에 맞게 생활하는데 큰 몫을 담당케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때로는 병들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절제를 습관화 하게 만들었다. 파랑새 장학금은 한 고학생의 장학금으로만 역할하지 않은 것이다. 장학금을 받는 당사자에게 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는 친구의 건강한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장학금이었다.

이제는 고희를 넘긴 시점이지만, 아직도 ‘파랑새 장학금’은 고마움이고 은혜이며 생활의 나침반이었다라고 생각되어 감사할 뿐이다. 성서는 말씀한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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