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에 걸려드는 것은 현란한 손놀림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현란함에 끌려가다 보면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의심을 갖게된다. 이 영화의 현란함은 배우이며 감독이며 그들이 엮어내는 눈요깃거리와 가십거리이다. 감독이 시인이라거나 여배우가 가수라는 사실은 우리 자신을 의심하게 하는 장치들일 뿐이다.

제목에 대해 시비를 걸고 싶다. 하나는 왜 ‘결혼은’이라 하고 쉼표를 찍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다. 다른 하나는 ‘미친짓이다’하고서 마침표을 찍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원작 소설의 표제가 그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독으로서 그대로 제목을 수용한 것에는 공동의 모의가 있을 법하다.

‘결혼은’다음의 쉼표는 ‘결혼이란 과연 무엇일까’하는 화두를 관객들에게 내어 던진 셈이다. 연희(엄정화)는 정확히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가 정확히 격주로 드나든 것을 알고서 나중에 준영(감우성)이 깨달은 것이지만, 그녀는 두 개의 결혼을 동시에 생활하고 있었다. 하나의 결혼은 조건을 중시하여 선택한 결혼이지만, 다른 하나는 사랑을 중심에 둔 결혼이다.

‘미친짓이다’의 마침표가 없는 것은 두 유형의 결혼 모두 포함해서 결혼에 대해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도 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

사랑 없는 결혼생활이나 사랑만 가지고 하는 결혼생활 모두 미친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의미이다. 이것 역시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 것이냐 하는 고민을 관객들에게 떠맡긴 모양이 돼버렸다.

분명 감독은 결혼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낼 속셈이다. 거리낌없는 한 여성의 이중결혼생활을 통해 현란한 노출장면을 과다하게 보여주면서 페미니스트들까지 이야기의 장소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장난기 섞인 대사와 소꿉놀이 같은 결혼의 단면을 통해 감독 특유의 ‘키치’를 자극하고 있다. 감독의 요청대로 이쯤에서 우리의 결혼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것은 어떨는지.



이정배 : sanmae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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