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신재 한림대 국문과 명예교수
바로 내일, 즉 8월 20일에 전국의 풍물굿 연구자들이 전북 임실군 필봉마을에 모여 한국풍물굿학회를 창립한다. 필봉은 좌도농악의 중심지다. 농악학회가 아니라 풍물굿학회이니 학제적 연구를 지향하는 학회다. 몇 달 전부터 나에게도 함께 일하자는 권유가 계속 있었으나 나는 풍물굿에 관한 연구가 얕아 정중히 사양했다. 앞에 나서지 않는 대신 뒤에서 성심껏 돕겠다고 했다. 최근에 풍물굿에 관한 연구가 상당히 활발해지고 있음이 감지된다. 풍물굿에 관한 논문들과 저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풍물굿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이가 열 명 가까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풍물굿에 대한 관심은 중국에서 오히려 높은 듯하다. 중국 정부는 2009년에 길림성의 조선족 풍물굿을 ‘중국조선족농악무(Farmer’s dance of China’s Korean ethnic group)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이 중국의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풍물굿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의 제천의식이다. 풍물굿에는 우리 민족의, 특히 서민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쌓여 있다. 그 속에는 우리 서민의 온갖 정서가 녹아 있고, 갖가지 놀이 종목들이 함축되어 있다. 음악, 문학, 무용, 곡예, 연극, 매스 게임 등이 그 종목들이다. 무동타기와 상모돌리기는 곡예이고, 잡색들의 놀음은 연극이고, 잽이들의 진풀이는 매스 게임이다. 판염불, 판굿, 판줄, 판춤, 판소리 등을 함께 공연하는 판놀음에서는 여러 놀이패들이 연합해서 판을 벌인다. 줄광대는 줄을 타고, 소리광대는 판소리를 한다. 그러나 풍물굿에서는 한 패가 모든 종목의 놀이들을 다 해낸다. 그만큼 함축성이 강하다. 한국형 버라이어티 쇼 혹은 보드빌이라 할 만하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공연예술이 된 사물놀이와 ‘난타’는 그 모태가 풍물굿이다. 풍물굿은 그 단순한 양식 속에 재창조할 수 있는 문화소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물놀이와 ‘난타’에서는 공연자와 관객이 분리되어 있다. 원래 풍물굿에서는 공연자와 관객의 구별이 없다. 후반부에 가서는 오히려 구경꾼들이 주체적으로 놀고 잽이들은 반주자로 물러난다.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하나로 결속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풍물굿의 덕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신명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방마다 사투리가 다르고 민요의 토리가 다르듯이 풍물굿의 색깔도 지방마다 다르다. 그 지방의 풍물굿의 고유한 색깔은 곧 그 지방의 고유한 향토문화의 색깔이다. 강릉농악, 평창 둔전평농악, 원주 매지농악 등으로 대표되는 강원도의 풍물굿은 한국 풍물굿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영동지방의 풍물굿이 그러하다. 이 말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투박하고 순박한 것이 강원도 풍물굿의 고유성이라는 뜻이다. 현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섣부르게 기교를 부리는 것보다는 원초적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낫다. 프랑스의 아르토가 발리섬의 민속춤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그것의 원초성 때문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천재적인 예술가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강원도의 풍물굿이 때묻지 않은 원초적 천진성의 경지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물놀이나 ‘난타’와는 차원이 다른 훌륭한 예술이 될 것이다. 중국 조선족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풍물굿이 강원도에서 부활하였으면 좋겠다. 강원도의 풍물굿은 짧은 시간에 그 일부만을 보여주는 공연예술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과정을 우직하게 다 연출함으로써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일체감을 다지는 놀이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풍물굿이라는 훌륭한 문화자원을 우리는 너무 방치해왔다. 강원도 풍물굿 발전을 위해서 헌신했던 류무열의 「한국의 농악」(1983)은, 물론 이것이 본격적인 연구서는 아니지만, 한국 풍물굿 연구사의 서두를 장식하는 업적이다. 그 뒤를 잇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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