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신재

한림대 명예교수
‘문화지도’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다. 문화지도는 한 지역의 공간적 폭과 시간적 깊이에 따라 형성된 사회·문화적 현상과 문화 장르들의 분포양상을 각종 기호를 이용하여 체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20세기 초엽에 이미 문화지도를 다투어서 제작했다. ‘독일 문화지도’, ‘폴란드 문화지도첩’, ‘스위스 민속지도’ 등이 그것이다.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서도 다양한 체재로 문화지도를 만들어냈다. 일본에서는 20세기 중기부터 ‘일본 민속지도’, ‘일본 마츠리(축제)지도’ 등을 펴내고 있다.

일반 지도가 한눈에 볼 수 없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문화지도는 그 지역의 문화 현상들과 그것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일반 지도가 여러 강들의 남상과 본류와 지류의 전체를 한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처럼 문화지도는 여러 종류의 민요들이 각각 어디에서 발원해서 어떻게 전파되고 어떻게 유파가 형성되고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가를 한눈으로 보게 해준다.그것은 또한 강원도의 각 지역별·시대별·계절별·계층별 음식 관행의 차이점들, 음식과 관련된 행동, 음식문화의 혁신 양상 등을 모두 보여주기도 할 것이다.

일반 지도가 산, 강, 호수, 평야, 바다, 취락 등으로 조직된 공간의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것처럼 문화지도는 제의, 연희, 무용, 놀이, 무예, 농악, 무악, 민요, 전설, 공예기술, 음식 등으로 조직된 지역문화의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해준다.어떤 일의 계획, 가령 작전계획, 도시계획 등에 지도가 필수품이듯이 문화행사, 축제 등의 계획에는 문화지도가 필수품이다.

문화전쟁시대인 이 시대에 문화지도를 가지지 않고 세워놓은 축제계획은 전쟁을 할 때에 지도를 가지지 않고 세워놓은 작전계획과 같다. 문화지도를 작성하는 일은 곧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확보하는 일이다. 가령 연극, 영화, 방송드라마, 게임시나리오, 만화 등을 제작하려면 이야기자원이 필요한데 우리의 이야기자원이 고갈되면 우리는 그것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우리가 좋은 이야기자원을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수출할 수도 있다. ‘미녀는 괴로워’는 이야기의 원료를 외국에서 수입한 예이고, ‘괴물’은 이야기의 원료를 외국으로 수출한 예이다.

앞으로는 더 좋은 이야기자원을 얻기 위한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철원군(2005년), 홍천군(2007년), 횡성군(2008년), 양구군(2008년) 등의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발간한 바 있다. 이러한 작업을 확장해 종합적이고 본격적인 ‘강원도 문화지도’를 제작한다면 그것은 강원도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화지도를 정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문헌조사와 현지조사를 병행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에 나온 한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저작된 유서(類書)들이 148종이다. 우리는 이 유서들을 정독하면서 강원도와 관련되는 기사들을 뽑아내는 작업을 아직 수행한 적이 없다. 현지 조사는 고을 단위로 할 것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하여야 할 것이다. 언제나 현지조사는 이미 늦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법이다. 어느 학자는 2009년에 어느 마을에서 토박이농악을 새로 발굴했다. 강원도 문화지도는 강원문화 연구의 기본 자료가 될 것이다. 그것은 강원도의 문화 정체성을 설정하는 데에, 또 도내 18개 시·군 각각의 문화 정체성을 설정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각종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도 전체를 조망하면서 각종 축제를 조정하고 재계획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용한 문화지도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지도는 한 장의 지도로 작성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책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그것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야 하고 오랜 시일이 걸려야 한다.

‘독일문화지도’는 1928년에 착수해서 1938년에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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