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교수
고교 평준화 이전, 명문고 입학은 곧 명문대 진학을 의미했다. 명문고 졸업장 자체도 평생 누릴 수 있는 무형의 자원이 됐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주요 인사들의 이력에 경기고, 서울고, 경북고, 경남고, 부산고, 광주일고 등 비평준화 시절의 최고 명문고 졸업이라는 한 줄이 빠지지 않는다. SK, TK, PK 등 정관계 인맥을 지칭하는 약어들도 원래는 출신 지역과 고등학교에서 따온 것이었다. 서울에서는 1974년부터, 1980년대 초반부터는 전국의 웬만한 도시들에서도 고교 평준화가 시행됐으니, 고등학교 학벌체제가 쇠퇴하기 시작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물론 마지막 비평준화 세대의 위력은 여전하지만 10년 내에 고등학교 학벌체제는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2013년부터 강릉, 원주, 춘천에서도 고교 평준화가 시행된다고 한다. 30년 정도 늦었지만 강원도의 고등학교 학벌체제도 이제 재생산을 멈춘다. 학력의 하향평준화나 사교육비 증가 등을 이유로 아직도 평준화를 반대하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개인적, 집단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비평준화 체제가 유지된다면 지역 명문고 졸업은 곧 지역 사회를 지배하는 네트워크에 편입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지역 명문고에 입학할 성적이 된다면 비평준화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한 비평준화 교육이 수월성을 보장한다면 지역 명문고 입학으로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도 있다. 지역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 무대에 진출한 지역 명문고 출신들이 형성하는 네트워크는 중앙 정치에서 비공식적으로 지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통로가 되어 왔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정치·경제적 소외감이 큰 강원도는 다른 지역의 거대 명문고 네트워크와 경쟁하기 위해 지역 명문고 체제를 더 오래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춘천과 원주가 평준화를 시행했다가 다시 비평준화로 돌아섰고 강릉은 평준화를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던 것도 그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소외 의식과 지역 명문고에 대한 기대감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명문고의 척도가 곧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의 수라는 점도 이러한 개인적, 집단적 기대와 욕망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비평준화에 대한 기대와 욕망은 시대착오적 부조리와 오판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지역의 평준화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거나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을 비교한 연구는 공히 평준화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더 긍정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비평준화 교육의 수월성은 비교 대상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지역 명문고 출신들이 폐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다양성과 경쟁을 통해 공동체가 유지·발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하다. 지역 명문고 출신들의 네크워크가 중앙 무대에서 지역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비평준화 지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역 명문고가 없어도 지역 출신 인재들의 네트워크는 만들어지기 마련이며, 오히려 지역민의 이해를 더 다양하고 경쟁적으로 수렴할 여지가 생긴다.

평준화가 현재 지역사회와 지역민이 느끼는 소외감과 위기의식을 해소해 줄 수는 없다. 학벌이 지배하고, 대학의 철저하게 서열화 되어 가는 사회에서 고교 입시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지역 인재 양성과 지역 발전이라는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 또한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라는 보다 큰 문제의 한 단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교 평준화를 통해 자라나는 학생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지역 사회의 다양성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그 어떤 명분이나 실리보다 더 크고 소중한 가치이며, 멀리 보면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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