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교수
정치는 인간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 이데올로기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여 사회의 통합적 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주의는 대립과 갈등을 ‘폭력’이 아니라 ‘말’, 즉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해소한다는 점에서 전제 정치나 권위주의 정치와 명백하게 구분된다. 또한 민주주의는 갈등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다른 정치체제와 구분된다. 시민 개개인과 집단의 차이와 다양성, 이에 따른 갈등을 사회의 정당한 구성요소로 바라본다. 민주주의는 사회 정치적 이견이 상존하고 갈등이 지속되는 상태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차이와 다양성을 민주주의의 정치적 자원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요건은 시민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가치관 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며, 이는 헌법과 정치제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는 근대 시민혁명에서 주창한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 가운데 하나로 반드시 포함되어 있으며,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서도 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다양성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언론학자 맥체스니(R. McChesney)는 자신의 저서 <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Rich Media, Poor Democracy)에서 시장원리에 지배되는 미디어 시스템의 확산으로 인해 언론의 자유는 미디어 기업의 특권을 보호하는 방패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거대 미디어 기업이 등장하면서 문화영역이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저널리즘은 쇠퇴했다. 이 과정에서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는 거대 기업의 이윤추구의 자유를 보장했을 뿐 실제 시민의 언론의 자유는 오히려 위축시켰으며, 결과적으로 다양성에 기초한 민주주의 또한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미디어 기업의 여론 독과점에 대한 우려는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미디어 산업에 대한 규제는 1990년대 이후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완화되어 왔으며 지난해에는 마지막 자물쇠였던 신문과 방송의 겸영 금지도 해제됐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종합편성채널과의 시장경쟁 격화로 그나마 문화적, 정치적 다양성을 유지시켜 주던 공영방송까지 무력화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희망도 없지 않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작고 ‘가난한’ 미디어 또한 지속적으로 등장해 왔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게시판과 블로그 등을 통해 차이와 다양성이 표출되는 공간도 계속 증가해 온 것이다.

스마트 미디어(smart media) 시대의 작고 가난한 미디어 자리는 ‘팟캐스트’(Podcast)가 차지할 모양이다. 큰 돈 들이지 않고 팟캐스트를 통해 음성 또는 영상으로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다. 최근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또한 그 정파성과는 무관하게 거대 미디어 기업의 시대에 언론 환경을 풍성하게 해 주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될 작고 가난한 미디어의 전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기쁜 일이다. 내용이 저속하고 불공정하며 허위 사실 유포한다는 등 언론 자유를 남용한다는 논란은 잠시 젖혀두어도 된다. 위대한 자유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로 인한 중요한 혜택 중의 하나는 틀릴 수 있는 권리이며, 설령 헛된 말이라도 반대가 꼭 필요한 이유는 거짓을 통해서도 진리의 다양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패와 억압을 극복하고 이성과 인간성이 획득한 그 모든 승리에 대하여, 세계는 남용으로 얼룩져 있는 바로 지금의 언론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하고 미국의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제임스 매디슨(J. Madison)이 언론 자유의 남용을 규제하려는 견해를 반박하며 했던 이 한마디는 스마트 시대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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