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교수
흔히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직업 공무원들이 대통령이나 시도지사 같은 선출직 공무원들의 정치적 목표에 기여해야 한다는 적극적 자세를 표현한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더라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자조 섞인 탄식으로 들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무원, 특히 고위 공무원의 영혼은 지나치게 강해서 문제인 것 같다. 각종 청문회나 공청회, 토론회 등에서 보면 공무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민감한 선출직 공무원들보다 더 사고가 경직되어 있고 뚜렷한 목표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물론 행정의 안정성과 계속성, 효율성을 위해서 보편성과 전문성에 기초한 공무원의 신념은 인정될 필요가 있지만 직업적 신념을 개인의 이념적 성향이나 가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더더군다나 그 이념이 조직적으로 체화되고 편중되기까지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한미 FTA 협상과 비준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나라 직업 공무원들의 이념적 편향이 한계치를 넘어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실을 보기 전에 이상적인 협상과정을 상상해 보자.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협상 대표들은 최선을 다해 협상한다.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전문성에 기초한 판단이 최선인가는 관련 분야 국회의원들의 협조와 조언을 구한다. 최종 협상안의 비준을 위해서는 때때로 국회의회들과 협상도 필요하다. 협상이 타결됐다면 협상 결과를 모든 사람이 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낱낱이 공개한다. 이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협상 담당 공무원들은 성실하게 협상 과정과 내용, 결과를 설명한다. 최종적으로 국회에서의 논을 통해 협상안은 비준을 받든지 폐기되든지 할 것이다. 비록 단순화시키기는 했지만 상식에 크게 어긋나거나 기대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상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협상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고, 협상 대표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최종적인 협상안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았으며 문제제기가 있을 때마다 간간이 해명하는 정도다.

FTA는 총합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개별 산업이나 직업, 직종에 따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어 있기 때문에 보다 큰 틀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이 관세인하를 통해 경쟁력이 제고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이 농업이나 서비스 분야의 손실보다 더 큰지, 그리고 더 크더라도 그 이익이 피해 산업의 손해보전과 경쟁력 강화에 손쉽게 유입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대단히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논쟁과 판단으로 귀결될 소지가 많다. 달리 말하면 FTA는 자유무역, 통제된 자유무역,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나 사회단체들이 국회에서건 어디서건 결론을 볼 문제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의 역할은 성실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지 논쟁 자체에 끼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통상 관련 공무원들은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협상안을 설명하는 데에는 불성실했던 반면, 알맹이 없는 이념적 대립에서는 자유무역주의자의 입장을 앞장 서 옹호해 왔다. 다른 부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업 공무원제에 내재한 관료주의에 행정고시에 의해 배출되는 고위 공무원 집단의 특권 의식이 더해지면서, 고위 공무원들의 보수성은 여전히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이번 FTA 갈등을 통해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엘리트 공무원들의 이념적 편향은 책임 정치의 장애가 되고 사회의 다원적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법 조항과 숫자로 무장하고 스스로 세력화되어 독선과 독단으로 흘러가는 고위 공무원들에게 국가의 미래를 무작정 맡겨놓을 수 없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놔둘 수 없다는 인식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사회적 위기와 혼란이 심해질수록 개혁의 과제는 더 분명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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