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주

한림대 교수

2년 넘게 지난 일이지만 한 남성이 캐나다에 망명한 사례가 최근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지, 힘든지는 사람마다 달리 생각할 수 있고,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실제로 한 해 수만 명이 새로운 삶을 위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떠나고 있다. 하지만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데 대한민국이 ‘망명’을 통해 떠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은 사뭇 충격적이다. 처음에는 ‘떠나고 싶으면 이민을 갈 것이지 굳이 망명까지 신청해서 나라 망신을 시켜야 했나’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사정을 들여다보니 대한민국이 망명을 신청한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2009년 망명 신청 당시 김 씨는 군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처지였고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할 군 생활이 걱정스러웠다고 한다. 결국 김 씨는 캐나다로 가서 평화주의 신념과 동성애를 이유로 망명을 신청했고,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는 그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한국군에서 동성애는 정신적 질병이자 공식적 혐오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신청인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징집돼 군 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 심각하다”는 것이 김 씨의 신청을 받아들인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의 상황 판단이었다. 캐나다 정부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되니 불쾌하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동성애자가 군 복무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어렵다. 성 정체성을 이유로 병역 의무를 면제해 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정책의 실효성도 있을지 의심스럽다. 단지 군 복무 문제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감수하고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낼 가능성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미군이 군인들의 성 정체성을 따지지 않는, 이른바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ADT, Don’t ask, don’t tell) 정책을 최근까지 유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 것이 한시적이나마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군대에 가기 싫다는 사람은 대체 복무를 허용해 주면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매년 600명 정도가 양심을 이유로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하고 있다. 동성애나 개인의 기질, 성격 등으로 인해 군 복무를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무조건적인 대체 복무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특정 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례가 있었고, 이듬해 진보성향의 한 판사가 헌법재판소에 병역 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신청했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결정을 내리면서도 대체 복무 제도의 도입을 국회에 권고했다. 국방부는 2009년부터 대체 복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었으나 시행을 1년 앞두고 결국 여론을 핑계로 대체 복무 도입을 백지화하고 말았다. 대체 복무에 대한 여론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형태로 군 복무가 대체되고 있다. 공익근무요원만 해도 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병역특례도 상당하다. 병력 자원의 부족이 걱정이라면, 특별한 사유 없이는 누구나 군 입대를 선택할 정도로 대체 복무의 기간이나 업무 강도를 높이면 된다. 지난 학기 강의 시간에 해 본 간이 여론조사에서 모든 학생들은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3년간 산불 감시요원으로 근무하는 것보다는 군 복무를 선택하기도 했다.

결코 포기하거나 바꿀 수 없는 양심, 종교, 성 정체성 등을 배려해 주지도 않으면서, 그런 국가를 지켜야 한다며 총을 건넨다. 아이러니를 넘어 비극이다. 그 결말은 감옥이었고 또 차별과 학대였다. 이제 망명이라는 새로운 결말이 하나 추가된 셈이다. 대체 복무라는 해피엔딩이 있는데 굳이 비극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의 가학적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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