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진

수필가

나는 요즘 죄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은 죄가 하도 많아 지난달부터 시작한 콜록거림이 그치지 않고 있다. 몸살로부터 시작한 감기가 자리에 누워 끙끙 앓기까지 했다. 이래서 누구든지 죄는 짓지 말며 살라고 이른 모양이다. 옥탑의 태양열 집열판 온도계를 보려고 짧은 허리를 굽혀 그들 기둥을 지나가다가도 ‘쿵’하고 이마에서 번개가 번쩍 치면 ‘내가 뭘 잘못했지?’ 속으로 반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건소장의 지시를 무시한 죄 값이다. 보건소에서 감기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으라는 통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잊고 말았다. 설마 해마다 안 걸리던 감기, 올해라고 찾아들라고 생각한 자만심도 한 몫 보탠 거다. 자신만만하던 내 예상에 철퇴가 내려졌다.

“당신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아요. 어서 병원에 가 보셔요.” 몇 번이나 근심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집사람의 권유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종합병원은 엎어지면 코가 닿을 데다. 종합병원에 가면 우선 무조건 엑스레이부터 찍으라는 게 귀찮고, 수많은 환자들 틈에서 장시간 기다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집에서 20여분 걸리는 친지의 약방을 물어물어 찾아가서 두가지약을 사먹으면서 버텼다. 동병상련의 어느 벗에게 말했더니 병원에 가도 감기는 아플 만치 아파야 낫는다면서 후평동 ㅂ약방에서 약을 사먹었더니 기침이 훨씬 줄어들었다면서 한번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솔깃해서 종합병원을 지나 병원까지 가는 거리의 몇 배나 되는 ㅂ약국을 찬바람 쐬며 찾아 가 또다시 닷새 치 알약을 사와 먹었다. 기침이 덜 하긴 뭘 덜해. 모임자리에서도 ‘콜록’, 식사장소에서도 ‘콜록’, 손녀를 맞이하면서도 ‘콜록 콜록’이었다.

“제발 병원에 가 보세요.” 콜록 거린지 어영부영 한 달이 넘었다. 이젠 미룰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마지못해 ㄱ 병원에 갔더니 호흡기내과를 지정하면서 특진을 권유한다. 환자는 약자인지라 그러자고 했더니 각서인지 뭔지 잘 살펴보지도 않았지만 뭐가 그리 체크해야 할 항목이 많은지 20여 가지가 넘는 듯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혈압을 재어 바치고 한참을 기다렸더니 드디어 특진이 시작되었다. 특진은 증상을 물어 재빠르게 적는 것과 엑스레이 판독이 전부였다. 폐렴인 것 같으니 닷새치 약을 먹고 다시 오란다. 종합병원에 오길 잘 했다. 아니면 지금도 감기약으로 미련하게 버티고 있을 것이 아닌가. 병원에 가 보란 간청을 어긴 죄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난 12월 26일, 이날은 우리 집의 역사적인 날이다. 집사람의 생일이자 우리 결혼기념일이었다. 두 아들 며느리, 두 손녀가 와서 집안에서 조촐한 생일음식을 즐겼다. 음식은 거의 다 집사람이 장만한 것이었다. 그래도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좋아했다. 아이들을 모두 서둘러 떠나보내자마자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다.

“오늘이 무슨 날이죠?” 찬바람이 일었다.

“당신 생일에다 우리 결혼기념일!”(결혼기념일은 둘째 녀석이 알려 줘서 알았다.)

“그래요! 오늘이 이게 어디 보통날입니까? 38년 만에 처음 맞는 경사가 겹치는 날이에요. 황씨 집안에 와서 갖은 어려움 무릅쓰고 두 아들 저 정도로 키워놨는데, 이거 해도 너무 한 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선물은 고사하고, “당신 생일 축하해요.”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생일케이크를 앞에 두고 합창할 때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한 것뿐이다. 일주일 전에 “26일은 별일 없죠? 비워두세요. 인천으로 바람이나 쐬러갑시다.” “응, 그러지 뭐” 까마귀 고기도 안 먹었는데 그걸 까맣게 잊고 말았다. “오늘 춘주수필에서 등산가는 날인데, 가면 안 될까?” 어제 저녁 개수대 곁에 와서 말할 때는 황당했지만 그래도 ‘잊어먹어 그랬구나.’ 이해하려고 했단다. 생일날 또 그 말을 하니 타는 아궁이에다 휘발유를 붓는 꼴이 되었다.

나는 그 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독수공방 하루, 부부모임친목회 1분 늦춰 나타나기, 사흘째 미소 안 짓기 등등. 이 냉기류는 언제나 풀리려나, 바보 바보 바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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