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수

삼척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관동팔경은 동해안의 빼어난 명승지 여덟 곳을 가리킨다. 관동(關東)이라는 명칭은 고려 성종 때 전국을 10도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서울·경기 일원을 관내도(關內道)라 하였고, 관내도의 동쪽에 위치한 땅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졌다.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을 들어 관동팔경이라고 하는데 월송정 대신 흡곡의 시중대(侍中臺)를 넣기도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 관동팔경은 모두 강원도의 명승지였는데 현재는 총석정과 삼일포가 북한지역에 속하고, 망양정과 월송정은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관동팔경은 신라시대 화랑도의 순례지로 각광받았고, 고려 중기 이후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승지로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총석정과 죽서루는 깎아지른 듯 아득한 절벽, 삼일포와 경포대는 호수의 포근함, 청간정과 망양정은 소나무숲 속에 구름처럼 편안한 정자의 운치, 낙산사와 월송정은 바다를 조망하는 아늑한 언덕 위의 절집과 정자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리하여 임금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시인과 화가들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면서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민족의 자연과 문화를 대표해왔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 새 천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해돋이행사를 보자. 인터넷 검색 창에 ‘동해안 해돋이 명소’라고 치면 강릉의 정동진, 동해의 추암, 포항의 호미곶이 나온다. 지난 천년 동안 해돋이의 명소였던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망향정, 월송정의 이름은 없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동해안 탐방로 ‘해파랑길’조성사업이나, 국토해양부의 ‘관동팔경 녹색경관길’조성사업에도 관동팔경 그 자체에 대한 특별한 사업계획은 없는 실정이다. 정부에서는 길을 만드는데 주력할 뿐이므로 그 길과 관동팔경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작업은 순전히 해당 지자체의 몫이라 하겠다.

관동팔경은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바람이 불면 놀란 물결이 어지럽게 돌 위를 쳐 눈인 양 하얗게 날아 펴지는 청간정, 보름 밤 술상을 놓고 사랑하는 임과 마주 앉아있으면 다섯 개의 달이 피어나는 경포대, 바닷가에서 해 돋는 풍경을 감상하는 다른 곳과 달리 강가에서 해 지는 풍경을 감상하고 강에서 뱃놀이하면서 누각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죽서루, 소나무 숲을 스쳐가는 바람소리가 일상의 피로를 씻어주는 월송정. 이런 개성미를 최대한 살리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각과 정자의 고전미, 그곳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을 아름답게 정비하는 하드웨어와 함께 시대감각에 맞는 교육·문화체험프로그램이나 이벤트 등의 소프트웨어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삼척시에서 죽서루 아래 오십천변을 정비하고 포토존을 설치하는 ‘죽서루 경관조성사업’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경주시에서 보름달 밝은 날 관광객들을 모아 남산으로 답사하는 ‘달빛 따라 걷는 남산여행’이란 프로그램은 달의 도시 강릉에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2014년이면 관동팔경 녹색경관길과 해파랑길이 완성된다. 길이 완성되면 정부에서는 지자체별 차별화된 관광프로그램 연계 및 마케팅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각광받는 세계적인 명품 보도길로 육성할 계획이다. 관동팔경이 21세기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 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관동팔경의 특별한 환경디자인과 매력적인 체험프로그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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