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신재 한림대 명예교수

지게에는 사람 냄새가 배어 있다. 지게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지게에는 기쁨의 눈물도 배어 있고, 슬픔의 눈물도 배어 있다. 지게는 단순한 운반 도구가 아니다. 지게와 지겟작대기의 용도는 아주 다양하다. 지겟작대기는 지게를 받쳐주는 도구, 그것을 잡고 일어서는 도구, 풀숲을 헤치는 도구, 갑자기 나타난 동물을 쫓는 도구, 사람을 때리는 도구 등으로 그 기능이 아주 다양하다. 지게는 야외용 의자, 베개, 침대 등의 기능도 가진다. 장날에 물건을 팔러 간 농부에게 지게는 상품을 진열해놓는 좌판이기도 하다. 지게는 악기이자 놀이 기구이다. 나무꾼들은 산에서 지겟작대기로 지게목발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편을 갈라 지게발걷기, 지게상여놀이 등 여러 가지 놀이를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지게는 탈것이기도 하다. 말이나 가마를 이용할 수 없는 가난한 서민 가족이 먼 길을 갈 때, 가장 혹은 건장한 맏아들은 잘 걷지 못하는 가족을 지게에다 태우고 갔다. 지게는 상여이기도 하다. 상여를 쓸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서민은 시신을 지게에 지고 산으로 갔다.

김유정의 소설에 지게와 지겟작대기가 자주 나타난다. 가령 ‘소낙비’에서 남편은 지겟작대기로 아내를 후려치며 노름 밑천을 구해오라고 협박을 한다. ‘봄·봄’에서는 장인이 지겟작대기로 데릴사위의 어깨를 그냥 내려치고, ‘동백꽃’에서는 남주인공이 지겟작대기로 점순네 수탉을 때려죽인다.‘떡’에서는 아내가 겨울 새벽에 덜덜 떨며 지게에 검불을 올려 실어주면 남편은 제왕처럼 지게를 지고 읍내로 가고, ‘안해’에서 남편은 쌍지게질로 나무를 읍내로 지고 간다. 이 밖의 소설에도 지게가 나타난다.

한 원로 학자는 그의 젊은 시절에 쓴 글에서 길을 넓히지 않고 지게를 만든 우리 선조들의 소극적 태도를 탄식하였다. 그 글에서 그는 로마로 통하는 모든 길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지게와 유사한 운반 도구는 중국, 일본, 유럽, 아메리카주 등 외국에도 있다. 오히려 외국 사람들은 한국 지게의 단순성과 기능성과 과학성에 감탄을 한다고 한다. 지게에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정신을 읽어낼 수도 있다. (오늘날 통일된 계획 없이 강원도의 산을 허물기도 하고, 굴을 뚫기도 하는 데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근 30여 년 전에 나는, 가장 강원도적인 놀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느냐고, 이보형 선생에게 가볍게 물음을 던졌다. 당시에 그는 문화재위원이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지게놀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근 20년이 흘러 김광언 선생이 ‘지게연구(2003)’를 출간했다. 이 방대한 저서는 아마도 지금의 단계에서는 한국 지게 연구의 결정판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게놀이 여덟 가지를 논의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강원도의 것이다. 지게싸움놀이(양양), 지게타기(정선), 지게발걷기(화천, 양양, 태백), 지게목발들기(양양), 지게시집보내기(영월), 지겟작대기돌리기(화천), 지겟작대기뛰어넘기(영월), 지게행상놀이(화천, 영월, 평창, 정선)의 여덟 가지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강원도무형문화재 제7호인 양구의 돌산령지게놀이(1999년 지정)가 누락되어 있다. 이것은 지게걸음싸움, 상여놀이, 회다지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어쨌든 지게놀이는 강원도 지역에 밀집되어 전승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지게목발춤이 밀집되어 전승되어 온 것과 대조가 된다.

지게는 노동의 도구이자 놀이의 도구이다. 노동의 도구를 놀이의 도구로 이용한 데에서 우리는 노동과 놀이가 조화된 삶을 사는 방법을 암시받는다. 노동이 삶에서 소외된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에게 이것은 중요한 교훈이다. 또한 지게놀이는 마을 사람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지게상여놀이가 그러하였다고 한다. 지게가 거의 사라져버린 오늘의 상황에서 지게놀이의 정신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를 면밀히 연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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