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백령동산의 잣나무들은 어딜 가고 울울 창창 솔들의 키 재기가 한창이다. 그 밑으로 진달래 무리들이 벌 나비 유혹하느라 붉은 생식기를 앞 다투어 활짝 벌리고 있다. 그 북녘 장학동산엔 새하얀 아카시아꽃무리들이 윙윙거리는 벌들의 애무에 고개까지 타라 매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돌산성과 전계심의 비석을 보듬고 붉은 무리들과 대치하며 북한강의 힘센 물줄기까지 돌린 봉의산의 숲, 우리처럼 힘센 수목 있으면 나와 보라 으스댄다. 옛 강촌역-경강역사이의 불그레하게 누운 철길 한 쌍이 걷어치우기 전에 잘 왔다면서 시원스레 밟아 달라 매끄러운 볼을 내맡긴다. 공지천 조각공원의 품격 높은 작품들을 우러러보고,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에 들러 옷깃을 여민다. ‘뜨락’의 들꽃 향에 취하고, 어둔 사연 골라내어 의암호의 푸른 호수 깊숙이 던져 넣는다. 황금비늘테마거리의 쪽 뻗은 П자 모양 가로수를 별단장군인양 의젓하게 사열한다. 정담·재담 꼬리에 꼬리를 잇다보니 송암 종합 레저 스포츠시설이 확 눈에 들어온다. 웅장함과 새로움에 춘천발전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의암호의 강변길은 물위에 떠있는 중도와 상중도 숲들의 평화로운 정경에 넋을 놓는다. 믿음직한 삼악산-북배산-용화산 줄기의 어깨동무 모습에다 갖가지 들꽃의 경염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공지천의 새 자전거 길에서는 맑은 시냇물소리와 물새들의 조잘거림이 정겹다. 석파령 오르는 길에서는 신관사또의 행차보다 늦을 까봐 숨이 차도 발길 쫓는 아전이 되어본다. 의암호의 물길 따라 이산줄기 저산줄기 굽이굽이 골짝골짝 넋을 놓고 내려가다 보면 메타세콰이어, 밤나무, 미루나무가 하늘을 찌르다말고 고개 숙여 반긴다. 반달모양 남이섬이 어서 오라 파란색 널따란 배를 내놓는다. 남면의 육개봉 찾아가는 산등성이는 어이 이리도 길고 길다더냐! 홍천 어유포의 잣봉산은 들꽃천지다. 용담 물봉선 투구꽃 엉겅퀴 진달래 철쭉…. 홍천공작산 수타사 골짜기는 낭만의 숲길, 추억의 길이다. 게다가 영서 최고 고찰 수타사가 안겨 있으니 청기와와 탱화 등 볼거리가 많기도 하다.

이상은 수필가족들이 지난 한 해 동안 걸으며 즐긴 12곳의 정경이다. 여기서 수필가족은 강원수필문학회· 춘주수필문학회 회원과 춘천문화원 문예창작반 수강생들, 강원문인협회 회원들을 말한다. 매달 둘째 주 월요일에 평균 14명이 대략 3.5㎞씩 걸었다. 54명에 연인원 170명이 참여했다. 7,80대 작가들이 젊은 이 못지않게 잘도 걸어 그 이하 사람들이 다리 아프다 발바닥 아프단 엄살 쏙 들어가게 했다. 다리에 힘을 올리고, 글 소재도 찾고, 정담을 나누며 맛있는 먹을거리를 나누는 즐거운 모임이다. 몇 해 전 봄부터 따 온 구기자 산딸기 매실 같은 갖가지 열매로 만든 약주와 갖가지 커피가 풍성했다. 정성들여 만들어 오거나 마련해 온 쑥떡 찰떡 송편 총떡 부침개 사과 배 감 포도 딸기 오이 키위 바나나 빵 초코파이 사탕 껌…. 가짓수가 하도 많아서 입이 딱 벌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러니 살 빼려 왔다가 도리어 찌고 가겠다는 우스개가 나올 만하다. 갖가지 먹거리에 입 호사 배 호사에 기쁨이 절로 솟는 나들이다. 임플란트와 털이에서 시작한 치과 이야기에서부터 허리 디스크와 요실금 경험담까지 병원정보와 건강정보가 춤을 춘다. “수필문학의 박아무개 글, 맛깔스레 참 잘 썼던데…” “도민일보의 김 아무개 글은 해학이 넘쳐서 미소가 절로 나던데.”모두가 수필평론가가 된다. 끌이 없는 가사노동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한 달에 한두 번 맑은 공기 실컷 마시며 즐거움을 누리는 내세상이다. 땀을 흘리니 찌뿌드드하던 몸이 개운해진다. 예정된 거리를 아무 탈 없이 다 걷고 나니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다리가 정정하다는 징표이리라. 주위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부심이 인다. 두 다리 가뿐가뿐, 기쁨이 새록새록, 온정이 퐁퐁 솟아오른다. 모두 들 헤어지기 아쉬워 흔드는 손 내릴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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