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민

홍천 백락사 주지스님

춥다. 며칠 따듯했던 날씨 탓에 더 춥다. 정신 나간 나무들이 봄인가 싶어 기지개를 켤 만큼 따듯했던 며칠이 선잠처럼 아득하고 설날 정신이 번쩍 드는 차가움이 새삼 겨울스럽습니다.

자꾸 방안에만 있게 하는 차가움을 무릅쓰고 햇살이 있는 마당을 산책하다 문득 이맘때 여행을 갔다 왔던 미얀마가 생각이 났습니다. 따듯했던 날씨도 그립고 좋은 사람도 그리웠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이 귀찮지 않았고 또한, 왜 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는지 돌아와 생각하면 몸도 마음도 따듯했던 기억 때문에 자주 행복했었는데 그 중심에 현지 가이드 이형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유람하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의 얼굴을 지닌 땅이 미얀마임을 확신하고 그곳에서 산 지가 벌써 10년. 이제 미얀마인이 되어 한국인을 맞는 것 같다고 인사를 했던 첫 만남. 진실한 행동과 따뜻한 마음이 잊히지 않아 가끔 전화를 드리곤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백락사에 오신 손님이 이형의 안부와 이곳을 한번 들러 볼 것을 추천했다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내 생애에 있어 사람이 사람을 만나 스승으로 삼고 싶을 만큼 감동적인 때가 두 번 있었는데 두 번의 미얀마 여행에서 만난 이형도 그 중 한분이십니다. 매사 진실함이 묻어 나왔던 행동거지 때문에 나의 경박한 처신이 되돌아 보였고 아이들을 대하는 자비스러움 때문에 어느 성직자보다 고귀한 영혼을 보았습니다.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폐사지에서 빗물 소리를 들으며 내 삶의 어설픔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바간의 모든 탑들을 함께 돌아보고 싶다고 한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많은 이유들이 구차스러워서, 인간이 인간을 무시하는 눈빛을 떠올리면 전율스러워지는 이 땅에서 끼리끼리 잘살자는 조건에서 비켜난 까닭으로 더욱 미얀마가 고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물질은 가난해도 영혼은 가난하지 않아 평등하게 웃을 수 있는 미소를 보면 우리가 평가하는 잘산다는 척도가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불쌍하다고 본다면 그것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미얀마스러운 사고로 행동하는 이형은 내가 떠나고 싶은 나라에 살고 있음이 부러웠습니다.

내가 아는 많은 분들이 미얀마를 다녀와서 이형의 이야기를 합니다. 좋은 사람 한 분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 한 사람의 감동이 일파, 만파의 물결로 나누어지는지 알기때문에 내가 만나는 인연들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것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한다고 어설픈 정의를 내리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이의 스승이며, 모든 종교의 본질이며, 진정 참 가치임을 느꼈습니다.

설날, 까치 울음처럼 반가운 소식 전해준 손님도 전생에 맺은 인연이 있어 만났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고 존재감 없이 살고자했지만 어느 보석보다도 빛나는 나의 스승 이형께 안부 전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의 맑고 고운 소식이 이번 추위를 잊게 합니다. 사람 속에서 행복하고 싶어 저는 떠나고 이형은 자신을 찾고 싶어 이곳을 오게 된다면 세상은 하나의 꽃이겠지요. 경진년 새해 건강하시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위하여 함께 기도합니다. 멀리서 안부 전합니다.

세상은 하나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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