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종

원불교 삼척교당 상타원 교무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더라도 희생정신만큼 숭고한 것은 없다. 가정, 사회, 국가, 세계 등 그 어떠한 집단이든지 희생정신이 살아 있는 집단은 생명이 있고 반드시 발전한다. 특별히 이 희생정신은 지도자들에게 갊아져 있어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정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이다. 지도자들이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을 발휘한다면, 그 집단은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발전을 할 것이고, 그 지도자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자리 할 것이다.

공도헌신자 이부사지(公道獻身者 以父事之)라하여 공도자를 어버이처럼 섬길 것이니까. 그런 희생이 인(仁)을 이룬다고 한다. 이 인(仁)은 도덕적의 인(仁), 진리적 인(仁), 성스러운 인(仁)이다. 이 어질 인(仁)을 성스러운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지도자의 참다운 가치는 대중들을 위하여 그가 속한 사회집단을 위하여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을 마음과 대동하게 여기고, 마음을 ‘나, Ego, 자아’로서 보편적으로 표현을 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진리적 자아( 眞理的 自我 ), 습관적 자아( 習慣的 自我 ), 사회적 자아 (社會的 自我 )가 그것이다.

진리적 자아를 실현시키면 그것이 곧 인(仁)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 각자 사람들은 본래적 자아가 있다. 그것을 무아적 자아라 하고, 무아적인 본래 자아를 깨닫고 그것을 본 받아 실천하는 것을 진리적 자아라고 한다. 이 진리적 자아가 인(仁)의 모체를 실현하는 것이며, 인의 모체가 실현 될 때 살신성인(殺身聖人)의 희생정신이 저절로 무의식적으로 발현하게 된다. 그리고 무아적인 본래 자아를 깨닫는 방법은 찰라 찰라에 변화하는 자기 마음을 잘 성찰하면 알 수 있다. 매일, 매일 접하는 경계 경계 마다 자기 마음을 잘 성찰하여 무아적인 자아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터득해야 한다.

다음은 습관적 자아이다. 습관적 자아는 본래 똑같은 마음인데, 경계 따라서 한 마음을 내면, 마음 내는 그 쪽으로 마음이 길들여지고, 말(언어)이 길들여지고, 몸이 길들여지게 된다. 이렇게 길들여진 자아가 지금의 ‘나’ 인 것이다. 이것을 습관적 자아라고 한다. 바로 나의 인격이고 나의 인생이다. 흔히들 말하는 그 업의 정의가 습관적인 자아이다. 습관적인 자아가 잘 길들여진 사람들을 우리는 지혜롭고, 덕성스럽다고 한다. 지혜와 덕성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지혜와 덕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한다고 했다. 천지는 민심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대인여천지합기덕(大人與天地合其德)이라.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한다고 했다.

다음은 사회적 자아이다. “누구,누구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세상에 돌아다니는 소문이 있다. 아무게 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있다. 우리가 청문회를 보면 그 사람의 사회 기여도를 알게 된다. 이것을 사회적 자아라고 하고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면,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과 타인이 나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착하고 실력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평가가 다르면 사회적 자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어떤 평가를 받는가,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여실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아 형성의 좋은 방법은 사람을 바르게 볼 줄 알아야 하고 (知人) 사람을 바르게 잘 기를 줄 알아야 하며 (育人) 사람을 바르게 잘 활용(用人)할 때 지도자의 사회적 자아가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많은 지도자들이 배출될텐데, 덕목을 잘 갖춘 자질 있는 지도자들이 많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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