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수

삼척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시대, 문화상품시대, 문화전쟁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 지구촌은 모든 문화가 상품화되고, 문화의 힘에 의해 제국과 식민지로 양분되는 문화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 원래 문화는 상하우열의 비교대상이 아니고 서로 다른 차이와 특성으로 구분되는 조화와 공존의 대상인데 자본주의시대를 맞아 상품화되면서 문화권력의 총칼로 변한 것이다. 문화상품화의 선두에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수입하여 미국식 상품으로 재가공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프리카에서 재즈를, 영국에서 SF를, 이태리에서 피자를, 독일에서 핫도그와 햄버거를 받아들인 후 그것들을 미국식 대중문화로 재생산하여 다시 세계로 내보내고 있다. 미국식 대중문화의 판매는 막대한 자본과 조직을 앞세운 다국적 기업들이 담당한다. 그들의 힘에 의해 많은 국가의 고유한 문화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그 자리는 미국식 대중문화가 차지한다. 그렇게 문화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국가의 문화는 지역의 문화가 모여서 만들어진다.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 지역문화가 모여 민족문화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대국의 정치적 힘과 다국적 기업의 거대 자본을 무기로 밀고 들어오는 미국식 대중문화와 맞서는 힘도 결국 지역문화를 강건하게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문화를 강건히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지역의 문화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다.

지난 해 11월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용평리조트에서 개최한 정책세미나의 발제를 맡은 문화기획자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문화로 만드는 신명나는 지역공동체>라는 논문을 통해 지역사업이 성공하려면 지역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다양한 유산과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지역주민, 전문가, 공무원이 저마다 역할을 분담하며, 장기적으로는 이를 지속적으로 영위할 인력을 육성·확보하고, 교육을 통해 전문성과 자생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표의 발언요지는 결국 사람이고, 좀더 압축하면 역량있는 문화전문가의 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전문가라고 하면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으로서 학문적 식견과 창조적인 문화마인드로 지역문화활동을 적극적으로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문화전쟁시대에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문화현상을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 시스템에 맞는 방안을 찾아 지역의 문화정책이나 현장에 효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원도와 같이 문화환경이 열악한 농·산∼어촌의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문화행정을 전담하는 공무원 전문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강원도의 18개 시·군을 살펴보면 지역의 문화재관리를 전담하는 학예직 공무원은 겨우 한명이고, 2009개정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2011년부터 박물관에서의 창의적 체험학습 비중이 크게 확대되었지만 강원도지역의 공립박물관에는 교육 전문 학예사(에듀케이터)가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유·무형문화재의 발굴이나 시대감각에 맞는 문화정책 또는 각 계층의 수준을 고려한 교육프로그램 등의 새로운 사업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그저 현상유지에 급급한 형편이다. 교육현장과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수용하고,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발굴하여 창조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문화전문가의 확충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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