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는 그리스 라틴 고전을 원전으로 읽는 것이 취미다. 스티브 잡스 또한 인문고전을 즐겨 읽으며 그것에서 창조의 아이디어를 잉태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리더 손정의 또한 대학 시절 손자병법을 수없이 읽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저자 이지성의 말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리더들은 자신들의 성공비결이 인문학 리딩에 있음을 강조한다. 인문학을 통해 배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결국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많은 리더들의 고백에 힘입어서인지 지금 대학 밖으로 나온 인문학은 과거에 비해 정치 경영 사회전반에 그리고 대중계몽에 활발히 접목되어 웅비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인문학 입지는 나날이 쇠퇴일로이다. 몇년 전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인문학 선언문’에는 ‘무차별적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팽배한 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은 존립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귀절이 나온다. 사실 인간의 존엄성과 삶 그리고 사유의 틀을 제공하는 인문학은 유형의 결과를 얻기에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 그 유형의 결과 또한 어쩌면 확인조차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개선되는데 필요한 가치를 가르치지 않고 즉각적인 생활의 필요에만 적응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작금의 대학교육은 인문학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이는 본말이 전도된 흐름이다. 최근 교과부가 각 대학을 평가할 때 취업률을 중요지표로 넣으면서, 대학에서의 인문학 부활은 논의의 대상조차 안 되는 실정이다.

순자는 군자와 소인의 학문을 차별성있게 정의한다. 군자에게 있어 학문은 귀로 들어가면 인격을 향상시키는 요소가 되어 자신을 갈고 닦는 토대가 되고,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면 곧바로 입으로 나올 뿐 자신을 연마하는 양식으로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구이지학(口耳之學)이라는 것이다. 최근 몇몇 대학들이 생존의 자구책으로 인문대학을 축소 통폐합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인문학은 구이지학의 학문이 결코 아닌데 대접이 너무 초라하다. 기본을 홀대하는 근시안적 사회를 개탄한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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