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한 한국교육의 요체는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높은 교육열’일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강한 동기나 열의가 교육열이라는 사전적 의미만을 생각할 때 교육열은 비난받을 대상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교육열은 늘 ‘치맛바람의’ ‘과잉의’ 등 이기적인 수식어와 함께하면서 사회문제의 주범으로 해석되어 왔다.

‘열의’라는 단어는 역량을 창출하는 긍정단어임을 입증하는 사례가 있다. 바로 우리엄마들의 딸교육 이야기이다. 전쟁통이 배경인 박완서 씨의 소설 ‘엄마의 말뚝 1’의 주인공 엄마는 딸교육에 열성이다. ‘너도 서울 가서 학교 가야 돼. 학교 나와서 신여성 돼야 해 알았지?’ ‘신여성이 뭔데?’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란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주인공 엄마는 글도 못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교육에 관한한 맹목적이다. ‘엄마는 이 시골딱지에서 가진 것도 없으면서 여자애를 학교까지 보내지 않으면 저애가 앞으로 이 세상을 무슨 힘으로 살아가느냐고 병석의 아버지께 고함쳤다. 중학교 입학금을 낼 때쯤 엄마의 왼손 중지엔 반지가 사라졌다’ 엄마를 부탁해의 한 구절이다.

의무가 아니고 선택이었던 딸교육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열심이었던 우리엄마들 교육열 덕에 알파걸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 남녀의 대학진학률 비교에서 여학생의 82.4%가 남학생 81.6%를 앞섰다고 지난주 통계청이 발표했다. 1990년 31.9%인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20여년 만에 배 이상 상승했다.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는 일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해 미래 경쟁력의 실체로 삼을 전략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유능한 여성인력을 사장시키지 않고 어떻게 미래일꾼으로 접목시킬 것인지의 고뇌와 실천이 국가 파워를 결정지을 관건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딸의 미래로 교육을 선택해 뒷받침해 온 엄마가 우리 사회발전의 일등공신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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