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아무도 직접 고래의 울음소리를 들어 볼 수 없다. 우리들이 그 울음소리를 듣기 전에 고래는 먼 곳으로 달아나든가 아니면 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래는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환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저 옛날 선사시대 동해안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고래를 몸으로써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많은 고래를 암벽에다가 그려 놓았을 리 없다.

그 그림의 현주소는 경상남도 울산시 언양면 대곡리의 반구대(盤龜臺)라 불리는 돌병풍이다. 물론 반구대에는 고래 말고도 고대인들이 관심 가졌던 다른 동물들도 그려져 있다. 예컨대 거북이 사슴 호랑이 같은 동물들 말이다. 그러나 거북이 14 마리, 사슴 41 마리, 호랑이 14 마리 정도인 것에 비해 고래는 무려 48 마리를 그려 놓았다. 고래와 선사인들 간 거래가 많았음을 증거한다.

암벽화를 남길 정도로 우리나라 주변 해역에 고래가 많았으므로 방생포 같은 곳은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이름을 날렸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악명'으로서는 아니었다. 우리 나라의 포경업이라는 것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간혹 고래를 해변가로 몰아서 잡거나 떠내려온 놈을 생포하는 아주 소박한 수준에 불과했다. 동해를 피바다로 물들였던 광란의 역사는 무능한 조선정부를 무시하고 몰려들었던 일본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의 포경선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근해에서 눈으로 확인된 고래는 약 3천 마리, 어림잡아 10만 마리가 동해 근방에서 뛰어놀고 있다. 15년 전 국제포경위원회의 고래잡이 금지 조치 이후 늘어난 고래 때문에 오징어 어선들이 조업을 못할 정도지만 고래의 재등장으로 환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고래 울음소리가 들렸던 아름답기만 한 동해의 잊혀졌던 저 원시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중이다.



기사 목록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