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초 토머스 모어가 처음 '유토피아'라는 말을 만들어낸 이래, 이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유토피아란 '그 어디에도 없는 곳'을 가리키며 따라서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제거되어 욕망과 그 성취 사이에 어떠한 긴장과 대립도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곳'을 가리킨다.

이 유토피아사상과 비슷한 천년왕국사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사상은 지상에서 이상사회를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종교적 교리의 형식을 지닌다. 천년왕국 운동은 정의롭지 못하고 억압적인 것으로 보이는 오늘의 사회에 반대하는 일단의 피억압자들이 현실을 거부하는 행동이다. 종교적인만큼 이들은 메시아가 등장하여 고통스러운 전환기적 시대를 뛰어넘어 이상사회를 이루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들과 비슷한 또 하나의 아이디어로 낙원사상이 있다. 낙원사상의 특징은 낙원이 역사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즉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 저 옛날 태고시대에 이미 낙원이 존재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년왕국사상이나 유토피아사상이 모두 미래를 지향하지만 낙원사상은 옛날에 있었던 세계의 일순간적 순환을 전제로 한다. 이런 면에서 낙원사상은 상대적으로 과거지향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을 보고 "경제에 대해서는 낙원을 목전에 둔 것처럼 장밋빛 전망만 되풀이했다"는 한나라당의 비난을 '낙원'의 의미로만 살피면, "그렇다면 김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과연 과거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인가" 식의 해석이다. 한 마디로 "아, 옛날이여"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말만 그렇게 한다는 비평이다. 우리 경제 과연 어찌 될 것인가?

李光埴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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