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선생의 수필 '가아든 파티'는 영국대사관에서 펼쳐진 엘리자베스여왕 생일축하 파티에 참석한 느낌을 적은 글이다. '영국 왕실의 문장이 금박으로 박힌 초청장을 일주일 전에 받고'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마음, 파티 날 '오래간만에 양복바지를 다려 입고 이발까지 한' 이 영문학자가 기라성같은 유명인사들 틈에 끼어 영국대사 부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정경이 한폭 그림처럼 곱게 그려져있다.

"손님들중에는 아는 분들도 있었는데 무엇이 겸연쩍은지 나는 한편 구석에 가서 섰었다. 처음에 대사와 인사할 때 가졌던 자신은 점점 없어지는 것이었다. 가슴을 펴고 배에다 힘을 주고 '나는 이 파티에 올만한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을 가져보려고 하였다. …나는 영국의 전통을 숭상하고 여왕을 예찬할 뿐만 아니라 영국문학을 읽고 가르치느라 반생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하며 자신감을 회복한 피선생은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악수도 하고 '지금은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옛 제자에게 웃는 낯도 해보이면서' 파티의 분위기를 즐긴다. 파티가 끝났을 때 '내가 바로 이 파티의 주빈이었다'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자동차 사이를 걸어서 빠져나온다.

20일 부시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국회의원이 3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중에서 취임식준비위원회의 공식초청을 받은 사람은 두명 뿐이고 나머지는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초청장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겉으로는 '의원외교'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달고 있지만 취임식에 참석한 6만5천여명의 하객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서 어느 정도의 외교성과를 거두고 돌아올지 의문이다. 그들이 나가서 쓰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테고. 초청장을 손에 넣기 위해 여기저기 줄을 대고 기웃거리거나 손을 내밀어 구걸하는 모습도 가련해보인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