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화백의 그림을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생명감' '정열' '힘찬 필치' '투혼' ' 순수' 등의 말을 쓴다. 운보의 예술세계를 상징하는 말이자 그의 인간 내면을 표현하는 언어들이다. 그가 만년에 매달렸던 '바보산수화'는 청(靑) 녹(綠)의 바탕을 힘찬 먹이 꿈틀거리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가끔 먹과 청, 청과 녹 사이에서 한 점 붉은 덩어리가 뜨거운 숨결처럼 산을 태우고 때로는 선혈로 응고한다.

운보에 대한 끝없는 감탄과 찬사는 그가 한국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말로 귀결된다. 산수 화조 인물 영묘 풍속으로 대강 나뉘는 한국화의 전통적 갈래를 찢고 쪼개고 때로는 합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또 다른 한국화'를 창조한 사람, 그래서 그는 종종 한국의 피카소로 지칭되기도 했고 전통과 현대를 접목해 한국화의 새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그가 어려서 병을 앓고 그로 인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고통을 뛰어넘어 침묵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꽃피운 과정은 다만 경이(驚異)와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작가가 어린이가 되지 못하면 그의 예술은 죽은 것에 불과하다"는 그의 지론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바보산수화'다. 바보란 '덜된 것'이고 예술도 '끝이 없는 것'이므로 영원히 덜된 것이라는 그의 예술관이 파란색과 초록색 바탕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파란색이 주는 무한의 세계와 초록색이 주는 생명의 세계, 그 속에서 운보는 힘찬 먹빛을 뿌려 미완의 자신을 끝없이 형상화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산과 물과 바위와 나무, 그리고 때로 날개 펼친 새로 하여금 덜된 인간세계의 우화를 쪼게 했는지도 모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단의 거인 황순원과 미당이 이승을 떠난 뒤라 그러한가, 화단의 거목 운보의 타계가 '덜된' 우리 예술의 빈자리를 더 크게 한다.

盧和男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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