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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열심히 뛸거야”

김광선 2012년 03월 29일 목요일
   
▲ 김광선

영월 옥동초교 교사

시골학교 와서 놀란 건 여자아이들의 축구실력이다. 정말 말처럼 잘 뛴다. 공을 무서워하지 않고 마구 달려든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겅중겅중 뛰는 모습이 힘차고 박력있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우리학교. 4학년 우리 반에는 여자 2명, 남자 6명, 전부 8명이 있는데, 22일 체육 시간에 4대 4로 축구시합을 했다. 나는 11년 동안 부천과 인천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봤지만, 이렇게 축구에 훈련된 여자아이들은 처음이다.

‘여자라서 못해요’ ‘여자들은 원래 축구 안해요’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하게 해주세요’…. 수없이 들어온 여학생들의 ‘내뺌’이 이곳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놀지 않았던 아이들이다.

남자랑 여자랑 같이 노는 게 자연스럽고, 재미있고, 신나는 일로 경험하며 성장한 아이들이다. 체육시간 시루는 몸을 공중으로 높이 뛰어 공을 막아냈다. 소희는 공을 패스하는 데 다리가 안 닿아 발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에 지켜보는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것 보고 아이들이 ‘숏다리’라고 놀리거나 ‘애쓴다’고 비아냥거리지도 않는다. 대신 “소희, 잘 한다” “힘내라!”고 격려해 준다.

아이들이 부러웠다. 난 초등학교 때,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 뜀박질을 못했기 때문에 체육과목이 들어있는 날은 항상 ‘비 내렸으면 좋겠다’라고 바랐기도 했다. 인형놀이랑 소꿉놀이만 하고 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제자리에서 하는 배드민턴이나 체조, 요가, 줄넘기, 훌라후프, 철봉매달리기 같은 것만 잘한다.

20대 후반에는 에어로빅을 배웠는데, 맨 앞줄에서 리듬 잘 타는 아줌마들보다 반 박자 늦는 걸 보고 몸치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너무 창피했다. 그뒤로 절대 체육 관련 연수나 민속춤 연수 같은 것은 신청하지도,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뜀박질할 작정이다. ‘잠자고 있는 몸’을 발동시킨 건 다름아닌 우리 반 여자아이들이었다. 소희랑 시루가 열심히 운동장을 휘젓고 공을 쫓아 다니는 걸 보고 깨달았다.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거나 공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고 제어하지는 못했지만 너.무.도 아름답고 훌륭한 축구선수의 모습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가파르게 몰아쉬는 모습에서 우리 딸 민애도 저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도 저렇게 뛰고 싶다고 생각했다. 30년 넘게 굳어진 몸이지만 마음을 열었으니 몸은 자연적으로 따라오겠지. 기대하시라. 다음 체육 시간에는 선생님이 제일 열심히 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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