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것을 그동안 학계에서는 노소당인(老少黨人) 간의 정쟁으로 노론에 의해 사도세자가 희생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99년 말 영조가 구술한 '어제사도세자묘지문'이 발견되자 사태는 달라지게 된다. "너는 무슨 마음으로 칠십의 아비로 하여금 이런 경우를 당하게 하는고"로 시작하는 이 묘지문에 "그래서 난잡하고 방종한 짓을 타일렀으나 제멋대로 군소배들과 어울리니 장차는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노라"면서 영조 스스로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둔 이유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사도세자의 죽음은 '권력갈등 살해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면 '그러면 그렇지. 아무려면 아비가 아들을' 하는 기분이 든다. 영조가 직접 칼을 휘두르며 "속히 뒤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외치는 장면이 객관적으로 서술된 '임오일기(壬午日記)' 속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세인의 인기를 독차지한 적이 있었다. 한 무명작가가 '아버지'란 소설을 써서 공전의 히트를 했을 때다. 이 소설을 읽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아버지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기도 했고 새삼 부정(父情)의 위대함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런 경우의 '아버지'는 어느 정치가의 '건국의 부'니 '근대화의 부'니 하는 그 '아버지'와는 너무나 다른 아버지이다.

아파트에 화재가 나자 6 살짜리 딸을 품에 안고 10 층에서 뛰어내려 자신은 죽고 아이를 살린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사람들 가슴에 눈물 젖게 하고 있다. 누가 아버지를 다만 엄부(嚴父)라 할 것인가. 또 누가 이 험란한 시대에 우리를 지켜줄 '아버지'가 없다 할 것인가. 아버지는 이렇게 항상 우리 곁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있는데.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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