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지우는 소나무에 대해 이렇게 예찬한다.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 눈발을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서 /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 내려왔다. 내가 품격을 위해서 /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 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이것이 /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 이 지표(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 건목(建木) ; 소나무, 머리에 눈을 털며 / 잠시 진저리친다." ('소나무에 대한 예배')

시인 김용택은 이 시를 읽고 "오, 이런. 이 오만함과 당당함이라니, 황지우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겨울바람 속에 들리는 솔바람 소리로 휘어진 내 삶의 한 구석을 확실하게 쭈욱 펴며 쌓인 눈을 턴다" 하고 있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면서 높은 품격으로 살겠다는 시인들의 당당한 삶의 정신이 정말 소나무에서 느껴지는 그것과 흡사하다.

소설가 정동주는 한술 더 뜬다. 이 사람은 아예 "한국인은 소나무사람이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한국인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지상의 첫날을 맞고, 산모의 첫 국밥도 마른 솔잎이나 솔가지를 태워 끓이며,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인 삼날이나 이렛째인 칠날에는 소나무로 삼신할미한테 새 생명의 장수를 빌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소나무를 사랑해 다양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정이품송 논개솔. 그리고 미인송 금송 황장목 곰솔 반솔 춘양목 금강송. 궁궐을 황장목으로 지음으로써 번뇌를 쫓고 관을 금강송으로 만들어 영생을 기원했다. 황장목림을 함부로 베어가지 못하도록 한 황장금표(黃腸禁票) 지역이 강원도에 22 곳이 있었다. 과연 이런 소나무를 대상으로 강릉에서 축제를 벌일 만하지 아니한가.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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