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며 무욕과 청빈을 높이 평가하지만 실제로 가진 것 없이 세상 살기는 쉽지 않다. 많건 적건 생전에 모은 재산을 훌훌 털어버리고 빈손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재(財)는 재(災)와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돈 벌고 재산을 쌓는 일에 거의 평생을 바친다. 부귀와 영화를 인생의 큰 목표로 정해 일생동안 개미처럼 재산 모으는 일에 열중하거나 출세길 찾아 헤매다가 육신이 쇠잔해진 어느날 죽음을 맞는다. 그게 인생이다.

열심히 일해서 떳떳하게 재산을 모아 부자로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존경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호사하는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법을 어긴 흔적이 들통나면 기껏 모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가기도 한다. 권력을 이용한 치부나 권력자의 그늘에서 부를 축적한 경우 두고두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비난의 화살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황금의 두꺼운 갑옷을 뚫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승에서 모은 전재산 2억원을 인제군에 장학기금으로 내놓고 청한(淸閒)의 여생을 보내던 정순옥(鄭順玉) 할머니가 가시밭길같던 이승을 떠나 저승길에 올랐다. 할머니가 남긴 건 장례비 230만원이 전부였다. "겨울엔 양지에서 햇볕을 쬐고/여름엔 냇가에서 목욕을 했습니다/힘닿는대로 부지런히 일하며/마음만은 한가로웠습니다" 아름다운 빈 손으로 명부에서 그렇게 고한 할머니에게 상제가 부드러운 말로 이렇게 다독거릴 것 같다. "소원대로 다 일러라/선녀되어 가려느냐/요지연에 가려느냐/남자되어 가려느냐/재상부인 되려느냐/제실 왕후 되려느냐/제후 왕비 되려느냐/부귀공영 하려느냐/네 원대로 하여주마/소원대로 다 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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