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早春)이라 하면 웃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저 언덕에 저렇게 봄빛이 가득한데 무슨 조춘이냐 할 사람 있을 것이다.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화사한 햇볕에 얼굴이 이렇게 그을었는데, 이미 정월 맹춘(孟春)을 지나 오늘이 음력 이월 하고도 초나흘, 벌써 중춘(仲春)에 접어들었는데 때 늦게 무슨 조춘 타령이냐고 나무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그렇게 언제 벌써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나갔구나. 이 겨울이 하 추워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어깨 움츠려 추워하며 거리를 걷다가, 후욱 한 줌 바람에 몸 부르르 떨다가, 곧 다시 방구석에 돌아와 늦은 세월만 나무라다가, 그러다가 언뜻 고개 들어 바라본 앞산이 아직도 그렇게 흰눈 덮었길래 이제껏 끈질긴 겨울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아니라 한다. 사람들이 웃으며 이미 봄이라 한다.

희끗거리는 잔설이 있다 하여 봄이 안 올 줄 알았더냐? 남녘 초당(草堂) 처마 끝 낙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더냐? 강물 흐르는 얼음장 밑에서 버들치 피라미들의 흥겨운 은빛 헤엄이 정말 즐거워 보이지 아니하더냐? 뭉클뭉클 피어 오르는 흙 냄새가 어머니 가슴 같지 아니하더냐? 새싹 여린 빛깔에 괜스레 울컥 눈물은 솟지 않더냐? 이마에 묻어나는 봄빛을 정녕 깨닫지 못하겠더냐?

아니다. 봄이다, 봄이 왔다. 봄볕 따습거니, 산으로 가자. 봄 들녘 아지랑은 그리움이고, 봄 바다 일렁임은 눈물이고나. 저기 봄바람은 들꽃 소식. 너희 가슴 풀어헤쳐 거기 엎어져도 좋으리. 냉이 달래 뜯어도 아니 좋으련. 매화 동백 그늘에 취해도 좋지. 이런대도 이제 겨우 조춘이라 이르느냐? 만춘(晩春)이 지난 다음 그 때서야 비로소 이제 날씨 풀려 희라, 봄이로구나, 할 테냐? 봄이 온 줄 정녕 몰랐더냐? 그렇게도 힘들더냐? 아아, 사는 게 그렇게도 힘들더냐?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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