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양 언론들은 영국 왕실 세자빈 다이애나가 죽었을 때 엄청난 지면을 할애해 그녀의 죽음을 충격적 사건으로 다루었다. 이는 중동지방이나 동양 일부 지역 언론들이 상대적으로 이를 적게 취급한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다이애나를 이런저런 남자들과 놀아난 '더러운 여자'로 보았지만 서양에서는 '세기의 결혼'으로 시작해서 '세기의 장례식'을 보여 주고 간, 그러므로 '세계의 공주'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 언론의 기본적 시각은 대체로 어느 날 갑자기 왕세자빈으로 등장했다가 또 어느 날 홀연히 지상으로부터 사라진 한 아름다운 여인을 '여신 다이애나'로 보고자 하는 세계의 환상적 구조와 의미 질서를 드러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설화세계 속의 아름다운 공주 모양 다이애나는 환상에 대한 인간의 거대한 욕구를 거의 모든 측면에서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신드롬적인 현상을 발생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환상은 대부분 사실이나 진실을 압도하여 말 그대로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념해야 할 것은 환상이 인간사에 활력으로 작용할 때는 긍정적이지만 현실과의 지나친 괴리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할 경우 심각한 위험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의 환상은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방미 중에 김대중 대통령은 "나는 북한에 대한 환상이 없다." 했고, 미국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 역시 "북한 정권에 대해 우리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對)북한 문제에서 리얼리티(사실성)를 확보할 것이란 차원에서 양측 시각 모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환상이 지나치면 환멸(幻滅)로 전락할 수 있으니, 아무렴 조심할 일이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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