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 멀리 있는 사람에게 집 소식만큼 반갑고 고마운 게 또 있으랴. 여북하면 시성 두보가 집에서 온 편지를 만금에 비했겠는가. "나라는 깨졌지만 산천은 그대로/성터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다/시국을 생각하면 꽃을 보아도 눈물겹고/안타까운 이별 새소리에도 가슴아파라/봉화는 석달이나 이너지고/집소식은 만금같은데/흰 머리 긁을수록 빠져/이젠 비녀를 꽂기도 어렵구나" 전란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낯선 타향에서 봄을 맞은 두보에게 꽃도 새소리도 슬픔일 뿐이었다.

중당(中唐) 시인 장적(張籍)이 타향에서 가을을 맞아 먼 고향 집 식구들을 그리며 읊은 시도 눈물겹다. "낙양성 가을 바람에/아득한 곳 식구들 그리워 편지를 쓴다/아무래도 못다 한 사연 있는 것만 같아/편지 전할 사람 길떠나려는데 다시 뜯어 읽어본다" 장원급제로 어사가 된 이도령이 남원고을로 암행을 가다가 옥에 갇힌 춘향이 편지갖고 서울가는 방자를 만났을 때 그 편지를 보기위해 써먹은 말이 바로 '행인 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이라는 이 시의 끝구절이다.

만당(晩唐)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오랫동안 사천성 산골에 머물며 만리 북쪽 장안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도 한편의 시다. "그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지만 기약이 없구려/파산엔 밤비 내려 가을 연못 넘치고/언제 다시 만나 촛불심지 자르며/밤비 오는 파산 정경 옛말처럼 해줄 수 있을지" 오랫동안 헤어진 친구는 간혹 생각나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혈육의 그리움은 시공을 넘어 가슴을 저미는 법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편지를 주고 받는다. 남북 각각 300통씩 주고받는 편지중에 도내 이산가족 30명의 편지가 교환된다. 50년 세월 속에 가물가물한 사연들, 그 눈물젖은 편지 한통의 무게를 어찌 만금에 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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