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3천여 개의 성이 있다. 적지 않은 숫자다. 조선 세종 때 양성지(梁誠之)가 우리나라를 "동방성곽지국(東方城郭之國)"이라 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전 국토의 요소마다 성곽이 자리한다. 문헌상 우리나라 최초의 성곽은 왕검성(王儉城)이다. '사기(史記)' '조선전'에 "한나라가 위만을 침범했을 때 우거(右渠)가 성을 굳게 지켜 여러 달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위만조선 마지막 임금인 우거가 지킨 도성이 왕검성이고, 학자들은 이 성을 평양성으로 본다.

'삼국지'의 '부여전' '고구려전' '진한전' 등에 성책(城柵) 예성(濊城) 등의 어휘가 보이니 물론 이 때에도 성곽은 존재했을 것이다.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기원 전후인 철기시대 초기에 이미 성곽이 축조되었다고 한다. 양산패총에서 발견된 목책(木柵)이나 성산패총에서 드러난 성책 등이 그 예다. 최근에 풍납리토성이 1세기에 축조된 성곽이라는 주장이 발표되기도 했다.

강원도에는 특히 성이 많다. 성이란 산세를 이용하여 세우기 마련이라 산이 많고 따라서 요충지가 될 만한 강원도 곳곳에 산성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춘천 봉의산성은 석축이요, 우두평고성은 토축이다. 강릉읍성은 토축과 석축의 혼축이다. 원주의 영원산성은 요즘 많이 얘기되는 궁예가 주둔했었고, 속초의 권금성은 관광지로 유명하다.

영월군 정량리에 있는 왕검성이 국내에 남아 있는 고대 산성 중 가장 크며, 그 축조 연대도 5 세기 후반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한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와 상류로 올라오는 적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볼 수 있다는 왕검성이다. 공교롭게도 위만조선의 도성과 이름이 같은 이 영월 왕검성의 역사적 가치는 규명돼야 하지만, 행여나 유명세를 타 훼손될까 두렵다. 그런 일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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