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아버지 자초는 진나라 태자 안국군의 아들로 분명한 왕손이었지만 조나라 한단에서 인질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별볼 일 없는 왕손 자초를 기화(奇貨)로 여겨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공을 들인 사람이 장사꾼 여불위(呂不韋)였다. "농사지어 얻는 이익이란 배를 곯지않을 정도지만 장차 대권을 잡을 왕을 보살펴 키워주면 그 혜택이 자손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여불위는 재산을 아끼지않고 자초에 투자해 마침내 진나라 왕으로 등극시키니 바로 장양왕이다. 자초와 그의 아들 정이 대권을 거머쥔 건 여불위 덕택이었다. 여불위는 2대에 걸친 킹메이커였고 그의 속셈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자가 되었다.

조선조 초기 수양대군이 쿠데타로 왕위에 앉기까지 장자방의 역할을 한 한명회 역시 킹메이커였다. 조선시대 말 자신의 어린 아들을 왕위에 올려 고종이 되게 하고 대권을 휘두른 흥선대원군 이하응도 킹메이커였고. 한명회가 명석한 두뇌와 노련한 정치적 감각으로 수양대군을 보위에 앉히는데 성공했다면 대원군은 서슬퍼런 안동김씨의 권력 그늘을 피해다니며 스스로 상갓집 개를 자처하면서 때를 기다렸고 때가 오자 전광석화처럼 권력을 낚아채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한명회는 생전에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사후에 부관참시되는 최악의 불행을 당했고 대원군 역시 권좌에서 쫓겨나 하릴없는 늙은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불위는 진시황의 상부가 되어 하늘만큼 높은 권세를 누렸지만 유배지에서 독배를 마셔야 했다.

때아닌 '킹메이커 논쟁'으로 정계가 또 시끄럽다. 킹이 없는 시대에 킹메이커란 말도 웃기지만 국민이 뽑는 대통령을 도대체 누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지,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노릇이다.

盧和男 논설위원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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