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인문학의 위기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재작년에 서울대 인문·사회대 학과장들이 주로 이공계 중심으로 재정 지원을 한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최근엔 '인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지식인 사회가 각론에 들어간 상황이지만, 그 사이에 '인문학은 과학에 굶주렸고 자연과학엔 인간이 없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또 작년엔 전국 100여 개 인문학 교수들이 비장한 결의문을 채택해 주목받았다. 학술대회를 마친 뒤 교수들이 '인문학 육성 지원을 촉구하는 우리들의 결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는데,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논리와 과학기술 만능 사고 방식이 대학가에 확산됨으로써 인문학이 고사지경이니 정부의 지원으로 인문학이 부흥토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사회 진보의 뿌리와도 같은 인문학이 '학문의 속류화'라는 천박한 시대 흐름에 천시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자들의 연구 태도에 의해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견해다. 인문학의 담론과 이론이 구체적 삶으로부터 유리돼 이론과 실천에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인문학계 내부에서 제기됐었다. 즉, '앎'과 '삶'의 괴리를 인문학이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엊그제 강원발전연구원 이사회에서 김진선 지사가 "연구를 위한 연구를 지양하라." "중앙을 상대할 논거를 확보하라." "신규 연구 수요를 창출하라."고 주문했다 한다. 기왕에 순수학문에서 '정책학문'으로 자리를 정했다면 앎을 삶으로 옮기고, 이론을 실천에로 결과짓는 '살아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 현실 분석 없이 이론 작업에만 그치는 우리 학문의 '지적(知的) 허영'을 나무라는 학계의 소리도 있다. 강발연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李光埴 논설위원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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