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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

2001년 04월 11일 수요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에 영화 볼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중년들이다. 낭만도 꿈도 문화 향수(享受)도 취미도 접고 사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년들의 현주소이고, 경제난으로 이런 현상이 더 심하면 심했지 무슨 영화 구경이냐고 푸념하는 모양이 오늘의 한국 중년 남자들의 자화상이다.

이런 까닭에 연전에 공전의 대 히트를 친 영화 '쉬리'나 '공동경비구역JSA'는 분단 현실을 그린 영화라 냉전 퇴조와 남북 경협 분위기상 그럴 수 있었다고 보지만, 최근 개봉된 영화 '친구'가 사상 최단 기간 2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은 아무래도 기이하다. 특히 중년층에서 마치 무슨 신드롬처럼 극장에 몰려든다든가, 서울에서보다는 지방에서 '친구' 관람에 더 열 올리는 현상은 그야말로 기현상이다.

왜 이러는가? 영화진흥위원회에선 '정치·경제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중년들의 현실 도피 욕구'가 이런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현실적 압박감이 40대 한국 남자들을 미래가 아닌 과거, 실제가 아닌 가상, 이상이 아닌 추억 속으로 가게 한다는 얘기다. 중년들은 지금 우정과 의리를 되살리는 그 때 그 시절의 '친구'와 검은색 교복이 그립고, 그 시절에 가졌던 희망은 물론 절망조차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이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에 말이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자유·인도주의적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했던 그 시절은 가 버리고 자유시장경제가 화려하게 꽃 핀 자리에서 중년들은 지금 시대적 정체성을 상실한 채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 '친구'는 말하자면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턱 없는 희망이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좌절로 결과된 이 현실을 잠시 치유하게 하는 가상 공간이다. 이 시대의 정치와 경제가 이 모양이고서는 중년들은 여전히 '친구'에 몰려들 수밖에 없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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