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의 유방(劉邦)과 초(楚)의 항우(項羽)가 중국 천하를 놓고 말 그대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한 판 승부를 겨두던 때,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오강(烏江)으로 도망쳤다. 오강을 지키던 관리가 항우에게 권토중래(倦土重來)를 권하며 배에 타라고 재촉했다. 양자강을 건너 강동에 돌아가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 항우는 이런 말로 사양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서른한살 생애를 마감했다. "내가 무슨 체면으로 강동에 건너가(無面渡江東) 부형을 대할 것인가" 중국사람들이 '미엔쯔(面子:체면)'의 소중함을 강조할 때마다 끌어대는 고사다.

하지만 중국사람들이 실리를 위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미엔쯔'를 스스로 내던진 사실(史實)도 있었다. 19세기 조선의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이 북경 인삼시장을 독점하자 중국상인들은 인삼값을 떨어트리기 위해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들의 속셈을 꿰뚫은 임상옥은 어느날 느닷없이 인삼더미에 불을 질러버렸다. 조선 인삼이 한꺼번에 불에 타 없어지면 인삼값이 오를 것은 뻔한 이치였다. 중국 상인들은 허겁지겁 임상옥을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더 높은 값으로 타다 남은 인삼을 사들여야 했다.

지난해 발생해 겨우 수습 국면에 들어간 한·중간 '마늘분쟁'이 다시 불거졌다. 우리 정부가 수입하기로 한 중국산 마늘 3만2천t 중 민간업체 자율수입 부분 1만여t의 수입이 지연되자 중국정부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을 선언 한 것이다. 산자부는 1천만달러어치 마늘 수입을 미루다가 6억7천만 달러어치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출길을 막을 수 없는 입장이고 농림부는 마늘농가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사람들의 '미엔쯔'도 살려주고 우리 무역의 실리도 챙기는 묘수를 정부가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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