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건축 또 하나의 우리모습'의 저자 목원대 이왕기 교수는 북한의 현대건축을 6번의 시간대로 나누고 있다. 첫 번째는 45년까지이며, 두 번째는 해방직후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시기. 세 번째는 6.25 전쟁 기간. 이 시기 건축은 전시환경 적응이 우선이어서 지하구조물들은 이때 많이 건설된것이 특징이다. 네 번째는 휴전 후 60년까지로 이슈는 건축에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 것이었으며, 다섯 번째는 70년까지로 '건축의 과학화'를 추창되던 시기, 마지막 여섯 번째는 80년대 전반기까지의 소위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위한 투쟁시기 건축'으로 비로써 건축을 예술로 생각하고 창조적 형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건축계에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게'가 주문되던 60∼70년대를 '전후복구 시기'라면, 80∼90년대와 그 이후는 이른바 '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설물의 시기'라고 나누기도 한다. 사실 평양산원, 창광원, 빙상관, 김일성 경기장, 인민대학습당, 평양개선문, 추체사상탑, 철도부혁명사적관, 청류관, 만수대의사당, 고려호텔, 평양제1백화점, 유경호텔 등 평양의 손꼽히는 건축물이 이 시대에 건설됐다. 이 시대 건축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런 교시가 있었다고 한다. "건축도 하나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건축 창작도 반드시 비반복적이어야 한다. 설계에서 유사성과 반복은 금물이다" 평양의 이들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왜 그토록 다양한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인공위성 아리랑 1호가 평양의 이런 건축물들을 선명히 잡아 송신한 것이 신문마다 났다. 많은 이들이 가보기도 하고 TV로 봐 낯설지 않은데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남·북은 그동안 갈라져 살면서 세계사 속에 독특한 현대건축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咸光福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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