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론자(反美論者)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미국적 이념과 제도의 확대를 통해 미국의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고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외적 선의(善意)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전파도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따라서 미국적 이념과 가치를 전파하는 당위성으로서 물리적 힘과 우월성에 바탕을 둔 미국의 망자존대(妄自尊大)를 오만하다고 비판한다.

이런 지적과 비판은 미국 스스로가 불러들였다고 할 수 있다. 윌슨이 '미국이야말로 세계의 희망'이라 주장한 이래 케네디는 '도덕적 지도자론'을 내세웠고, 지미 카터는 미국만이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 자부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에 미래가 있기 때문에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고까지 했다. 지난 수 세기 내내 이런 태도를 보여 왔으므로 우리의 반미주의자들처럼 중국 역시 반미적일 수밖에 없었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뒤에 중국은 처음으로 '중화민국'이라 이름한다. 여기서 '중화(中華)'란 고유명사가 아니라 '문명의 중심'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다. 19 세기 서구 열강에 이끌려 세계 무대에 나왔지만 중국은 여전히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 '세계의 중심'임을 자부하고 있다. 30여 년 뒤의 '중화인민공화국'도 이들이 '중화주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국명(國名)이다.

이런 미국과 중국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항공기 충돌사건으로 빚어진 미중 간 긴장이 풀리는가 싶더니 다시 꼬여,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강경해졌고, 외유 중의 장쩌민 중국 주석은 '강 건너 비바람은 미친 듯 거센데, 푸른 솔처럼 강직함은 산같이 의연하네'라는 의미심장한 시 한 수를 읊고 있다. 역사의 '새옹지마'는 과연 어디로 뛸까?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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