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자

춘천 추곡초 교사

3월이 4월에게 꼬리를 내어줄 이즈음에,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에서 쉼표 하나 찍고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짧은 산행이다. 드디어 오늘, 방과 후 2시쯤 통학버스에 오르는 학생들 틈에 끼여 열 두명 전 교직원은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북산면 부귀리 하늘 아래 계곡을 따라 걷기로 했다.

띄엄띄엄 나타나는 집 앞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시는 부모님께 마지막 학생을 내려 주고도 한참을 달려 차량이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 하차를 했다. 제일 먼저 우리 일행을 맞이한 ‘시골 향수’가 한참이나 뒤를 따르며 비탈길 안내하기에 걸음을 재촉했다.

봄의 문턱이라 햇살은 따사로워도 바람은 냉랭했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봄님’ 인가보다. 천천히 걷다가 우리 일행은 차디 찬 물 속에서 개체를 성숙시키는 생물체 하나에 눈길이 쏠렸다. 그 때 호기심 많은 선생님 한 분이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올려 놓고 자세히 들여다 보게 배려해 주신다. 나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 개구리알이다.

오랜만에 눈도 뜨고 코도 뜨며 두런두런 길을 오르자 목적지에 다다랐다. 아늑한 지형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그곳은 자연생태 체험학습장이다. 주변의 풍광과 가축 사육장, 150년 수령의 살구나무를 비롯한 과실나무들은 더없이 정겨웠다. 가지마다 겨울 눈은 아직도 잠든 채인데도 우린 누구 할 것 없이 마음에 편안함이 속속 배어듦에 틀림없었다. 체험장 주인께서 내오신 따끈따끈한 고구마와 담백한 묵은지 한 접시는 개운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 오늘 우리는 ‘낙원’을 봤다. 이곳에선 토종닭들도 암수 어울려 통나무 닭장에서 알콩달콩 사는 곳이니까 말이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텃밭에 자꾸 눈길이 갔다. 경사가 약간씩 있으니까 밭고랑 하나 하나가 마치 초코 카스테라를 구워 놓은 듯했다. 나는 흙을 참 좋아한다. 어릴적 기억들이 줄줄 따라 나오는 것 중의 하나라서 더 그런가 보다. 기름져 보이는 게 아주 부드러울 것 같아서 끝내 밟아 보니, 흑미 찹쌀가루를 가득 부어 놓은 느낌이랄까? ‘그럼 그렇지∼’ 하며 들여보고 있는데 냉이가 군데군데 나와 있었다. ‘뚝배기 된장찌개에 냉이 몇 뿌리만 넣어도 봄내음은 그만이지.’ 싶어 캐기 시작했는데 벌써 돌아갈 시간이란다. 봄의 낙원을 뒤로하고 굽이굽이 골짜기를 돌아 우린 떠나왔다.

날마다 동동 거리며 출퇴근 하는 ‘엄마 선생님’들은 도착하자마자 총총 걸음으로 퇴근을 서둘렀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려는데 나는 그곳에 대한 미련 때문에 퇴근을 미루고 학교 텃밭 냉이를 찾아 나섰다. 해질녘이 다 되어 자갈 사이를 헤집으며 캐낸 냉이를 쪼그리고 앉아 다듬는데 등 뒤로는 선들 바람이 불어 왔다. 이것은 냉이 뿌리의 흙먼지도 날려 주고 떡잎을 떼어 낼 때마다 밭으로 날려 버려 줬다. 참 고마웠다.

오늘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불었는데 이건 무슨 바람인가? 바로 신바람이다. 그동안 쌓인 일상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가 되어준 바람. 어느덧 다가온 4월은 신바람을 타고 뻥 뚫린 배후령 터널을 통해 왔다.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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