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간 예술인 최승희의 부활로 불리는 백향주가 모레 또 한번 한국 무대에 선다. 조총련계 재일 무용가의 출현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은 그녀가 '우조춤' '초립동' '무녀춤' '관음보살무' 등 최승희 춤을 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2살 때부터 금강산 가극단 출신 부친으로부터 춤을 배운 그녀는 평양을 드나들며 최승희의 양아들이자 국립만수대예술단 무용창작가인 김해춘으로부터 최승희춤을 전수 받았다.

98년 처음 한국에서 공연을 갖았을 때도 그렇고, 이번 공연을 앞두고도 회자되는 화두는 여전히 그녀의 춤이 얼마나 '최승희적'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최승희춤'으로 보존돼 있는 '북한춤'을 의미할 것이다. 46년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한 후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55년 인민배우가 될 때까지 체계화한 '우리춤'을 의미할 것이다. 백향주의 내한 공연은 관중을 사로잡는 눈빛과 동양의 신비한 매력이 담긴 춤사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일본 중국 무용계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바로 그 '우리춤'의 복권이라는 데 즐겁다.

문득 최승희 자신은 그의 고향에서조차 복권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알려진 것과 달리 그의 출생지는 홍천 남면 제곡리(諸谷里)다. 6.25이후 새로 만든 해주 최씨 대동보에는
부친 최준현에서부터 이어지는 승일, 승오, 영희, 승희의 가계가 빠져있다. 그러나 그곳엔 그녀를 기억하는 친척들이 살고 있으며, 곧잘 물동이 춤을 추어 보였다는 옻밭이 우물터도 그곳에 있다.

남편이 숙청된 후 함경도에서 살다 작고했다는 소리를 듣고 "김일성 첩이 됐다더니, 결국 그 꼴이 된 모양"이라며, 한줄기 눈물을 쏟아놓던 5촌 조카 최경희씨도 그곳에 살고 있다. 다만 이 전설적인 무용가의 고향을 찾아 주려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咸光福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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