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 없이 불교 조계종 혜암(慧菴) 종정이 ‘부처님 오신 날’ 법어(法語)를 발표했다.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무리여, 허망한 나를 버리고 참 나를 깨달아 영원한 행복이 넘치는 이 장엄한 세계를 바로 볼지어다.” 이 말 다음에 혜암은 “본래 마음의 밝은 달이 일체를 비추니 사바세계가 곧 정토요, 마군(魔軍)과 제불(諸佛)이 본래 한몸”이니 “모든 인류는 절대 평등한 생명의 존엄성을 자각하여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야차와 나찰과 구반다와 비사사나 부다 등 피를 빨고 살을 먹는 악귀 중 하나인 마군만 알면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법어다. 재작년에 발표한 혜암 종정의 하안거 법어는 사뭇 선문답에 가깝다. “운수납자 옷 무게가 일곱 근이요, 석 달 결제(結制) 적멸락이 한량 없도다.” ‘부처님 오신 날’일주일 뒤인 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 외부와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들어가는 수행납자(修行衲子)들에게 용기를 주려는 법어다.

작년 하안거 결제일에 발표한 혜암의 법어는 거의 선문답이다. “‘뜰 앞의 잣나무’와 ‘개가 불성이 없음’은 이 무슨 마른 똥 막대기인가?” 여기서 ‘뜰 앞의 잣나무’는 한 제자가 당나라 선승 조주(趙州)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답한 말이고, ‘개가 불성이 없음’ 역시 한 학승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란 질문의 답이다. ‘마른 똥 막대기’는 “어떤 것이 불(佛)입니까?”에 운문스님이 그렇게 답했다. 그러므로 혜암의 법어는 ‘본디 불이란 하찮은 것에도 있는 것이니 선각자에게서 얻으려거나 인식 주체의 주관이 개입되는 한 얻을 수 있음을 알라’는 정도로 이해된다.

해가 감에 따라 법어가 쉬워지는 건 어지러운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이 답답한 중생들이 제발 좀 알아들으라는 뜻.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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