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주말을 맞아 야구장엘 간 잭이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곁에서 함께 경기를 구경하던 동네 병원 의사가 안됐다는 듯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감기가 온 모양이구려. 약국에 가서 아스피린을 사서 식후에 따뜻한 물로 복용해봐요." 잭은 의사의 말대로 약을 사먹고 이튿날은 푹 쉬었더니 감기가 다 낳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난데 없이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동네병원의사가 보낸 진료 및 처방료 청구서였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웃집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처방전을 써준 게 아니라면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변호사가 말했다. 변호사 말대로 그냥 버티다 보니 그럭저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또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이웃집 변호사가 보낸 상담료 청구서였다. 의사 변호사를 싸잡아 비꼰 미국 사회의 소화(笑話) 한 토막이다.

의술이 인술(仁術)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감기환자를 정신병 환자로 둔갑시켜 더 많은 진료비를 청구한 의사가 '행림(杏林)'을 어지럽히는 돌팔이로 지탄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병의원들의 의료비 허위·부당청구가 말썽이 돼 우리 사회의 불신풍조를 확산시키고 있는 판인데 이번엔 의사협회 병의원협회 등 의료집단이 정부의 '진료내역 통보 포상금제'에 대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공동 투쟁'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도가 '의사들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해 질병치료에 가장 중요한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언뜻 듣기엔 옳은 주장 같은데 의사와 환자사이의 신뢰에 금이 간 사례가 너무 흔해진 세상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식의 논쟁으로 변한 정부 제도와 병의원 자율의 문제는 이미 지쳐버린 환자들에게 또 한번 쓴웃음을 짓게 할 뿐이다.

盧和男논설위원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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