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티브이에서 방영된 '서바이버(생존자) 게임'이 상륙한 이래 우리나라 각 매체에서는 요즘에도 여전히 그와 비슷한 프로를 내보내고 있다. 생활 게임 놀이 등에 열중인 출연자 중 시청자들의 투표로 한 주에 한 명씩 솎아내는 포맷인 이 '살아남기 게임'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엿보기(voyeurism) 심리'를 이용한 프로다. 엿보기류의 프로그램 중 미국 한 방송의 프로그램 이름이 아예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Big Brother)'인 것을 보면 인간은 분명 '감시자'로서의 위치에 서길 좋아하는 것 같다.

인간에게 정말 원래 관음증(觀音症) 성향이 없지 않다면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최근 보이지 않는 악의적 감시자들이 도처에서 우리들 현실의 삶을 감시하고 있어 백 가지 행동이 부자유하고 만 가지 말이 조심스럽다. 윤리적 일탈을 꿈꾸지 않는 보통사람일지라도 일단 호텔에 들어가면 먼저 시계나 거울을 뒤집어 보고 심지어 벽장이나 스프링클러까지 조사하는 진풍경을 벌이는 까닭은 어딜 가나 악성 감시 카메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정도다. 도덕적으로 엄숙주의자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남들의 엿보기에 둔감해지든지. 자신과 대면하는 성찰적 내면 엿보기에 열중해도 부족한 판에 이렇게 열심히 남을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이 판치는 사회로 가서야 되겠나. 마치 푸코가 연구한 '원형감옥(Panopticon)'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시선에 언제나 노출돼 있대서야 이 어찌 밝은 사회라 할 수 있나.

강원도 교육청이 전교조강원지부의 회의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엿보고 찍고 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강원교육에 있어서의 '빅 브라더'를 자임하는 교육청의 자세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비신사적이고 파렴치하고 몰염치하고 치졸하고 역겹고 비겁하다. 반면교사(反面敎師)이고자 했는가? 부디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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