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백 석을 받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는 실존인물이었는가, 아니면 우리 고대소설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효심 넘친 상상의 소녀일 따름인가? 홍길동처럼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선상에서 우리들을 항상 궁금하게 하는 효녀 심청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 매우 그럴 듯한 답을 내린 적이 있었다. 연세대학 사회발전연구소의 '심청연구팀'이 지난 99년에 내린 연구 결과가 그것이다.

심청연구팀은 심청이 지금으로부터 천칠백 년 전에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실존인물이라 주장한다. 심청의 본명은 '온홍장'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온양'이며, 심청은 당시 철광석을 수입해 가던 중국 난징(南京) 상인에게 팔려 저장성(浙江省) 성주 선궈궁(沈國公)의 부인이 되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그 근거로 '심청전'의 원형인 '관음사 연기설화'와 똑같은 내용이 중국 역사책 '진서(晉書)'에 기록돼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또 중국 저장성 푸퉈다오(普陀島)에 '심씨항구'와 '심씨마을'이 존재하며 현지인들이 그 곳의 뱃길을 '심수로'라 이름 붙였다는 점도 들고 있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심청처럼 자신의 몸을 공희(供犧)하여 부모를 공양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숨이 넘어가는 어머니를 살리려고 새끼손가락을 끊어 입 속에 피를 떨군 자식 이야기는 흔했고, 근년에도 간을 떼내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에게 이식해 준 인천의 19 세 청년 오강민 군의 "자식된 도리로 하나뿐인 아버지를 위해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겸손이 우리 전통 효사상의 표본이라 칭송받은 일도 있었다.

매년 돌아오는 5월에 여전히 어버이를 그리워하고 효도할 결심을 하지만 우리들은 불효에 늘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인다. 내일은 '어버이날', 심청과 똑같을 수는 없으나 또 다시 후회할 일 없기를 스스로 다짐해 봄이 어떠한가.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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