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기분 좋아요" 남자 프로테니스 투어대회 결승전에서 미국의 앤디 로딕선수에게 져 준우승을 차지한 이형택 선수는 경기장을 나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졌지만 기분 좋은 경기, 후회 없는 한판 승부였다는 뜻이리라. 졌는데도 기분이 좋은 까닭을 이선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갈수록 기량이 발전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가 평소에 껄끄러워했던 클레이(진흙)코트에서 최대한의 실력을 발휘해 세계 정상급 선수로 뛰어올랐으니 비록 졌지만 기분 좋은 게임이었음에 틀림없을 터이다.

세계적인 스포츠선수가 되는 일은 천부적 신체조건과 함께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선수를 키우는 지도자의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만 한다. 마라톤 강국의 자존심을 살린 황영조선수와 이봉주선수가 그랬고 세계 여자골프대회에서 한국인의 신화를 만들어낸 박세리선수, 미국 프로야구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룬 박찬호선수가 또 그랬다. 투박한 쇠뭉치로 새파랗게 날이 선 칼을 벼려내듯 울퉁불퉁한 돌덩이로 매끈한 조각품을 깎아내듯 자신을 끝없이 담금질하고 다듬는 사람들만이 스포츠의 화려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처음엔 모두들 이름없는 선수였다. 무명의 설움을 오직 연습으로 이겨낸 선수들일수록 빛나는 투혼을 지닌다. 절망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일수록 무서운 투지를 발휘한다. 지난해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고 기대를 모았던 이형택선수도 올 초부터 부진의 늪을 헤매면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 때 반짝한 게 아니냐"는 말도 돌았고 "+발에 땀난 격"이란 혹평도 들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그는 그런 우려와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고 정상급 수준에 올랐다. 땀으로 쌓아올린 저력과 기량을 본인 스스로 확인했기에 '졌지만 기분 좋은' 경기를 해낸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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