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대통령이 더 인기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성추행한 혐의로 대통령을 고소한 폴라 존스 양이 더 인기 있는가? 이 두 사람의 숨막히는 '인기 대결'이 벌어졌다. 물론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의 얘기다. 2천여 명의 정치인 연예인 언론인 들이 한 자리에 모인, 미국의 상류층 고급잡지 '배너티 페어'가 주최하는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파티장에서였다.

행사 시작 직전 존스양이 도착하자 수 많은 사진기자들이 몰려 파티장 입구는 북새통을 이뤘고, 존스는 리셉션장에서도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리는 등 최고 유명인으로서의 인기를 누렸다. 이에 비해 크린턴은 의례적 환영만 받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파티가 진행되면서 클린턴은 특유의 넉살에다가 언론의 성추문 보도를 비꼬는 연설로 시종 웃음을 자아내며 인기를 독차지해 갔다. 물론 언론은 이튿날 '인기 대결'에서 클린턴이 판정승했다는 보도를 내 보냈다.

대통령에 대한 일반대중의 지지는 일반적으로 '쇠퇴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살피면 취임 뒤 6 개월에서 1 년 정도는 '밀월기간', 3 년까지는 '환멸기간', 임기 말에는 '관용기간'이라는 복잡한 곡선으로 구성된다.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빌 클린턴은 파티장에서처럼 임기말까지 인기를 누린, 역사상 몇 안 되는 운 좋은 정치인이었다.

지금 외신은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매우 이례적인 인기를 누리는 중이라고 호들갑이다. 말을 바꾸거나 실언을 연발해도 여론의 지탄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고이즈미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의원들에게 오히려 항의전화가 폭주하는 등의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밀월기간' 뒤의 '환멸기간'엔 과연 어찌될까에 더욱 관심이 간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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