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보편적 윤리와 덕목은 시대가 변해도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때와 경우에 따라서 그 중요도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는 것 같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조차 어느 때엔 의가 강조되었다가 다른 날엔 신이 주목받기도 하고, 충의(忠義) 효도(孝道) 청렴(淸廉) 인애(仁愛) 같은 전통적인 유가의 예교(禮敎) 역시 시대에 따라 칭송되어지는 모양이 서로 다른 걸 보면 그렇다.

예를 들어 완적(阮籍) 같은 사람은 다른 어떤 덕행보다 지신(至愼:신중함)을 처세의 제일 태도로 꼽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살던 위진(魏晉) 시대가 격렬한 왕권쟁탈의 와중에서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또 고사나 일화를 수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란 책을 편찬한 유의경(劉義慶)은 '덕행' 편에다가 효도에 관한 일화는 다량 수록했지만 충성에 관한 고사는 거의 싣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그 까닭을 노신(魯迅)이 말한다. '위진 풍격과 문장 및 약과 술의 관계'라는 글에서 노신은 "위진시대에는 왜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려고 했는가? 제위(帝位)를 선양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힘으로 빼앗은 것이었으므로, 만약에 충으로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들의 입론(立論)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분위기였으므로 당시 제위 찬탈자들은 정적을 제거할 때 불충(不忠)이 아니라 불효(不孝)를 죄목 삼을 정도였다.

때에 따라 언행을 달리하고, 예컨대 분위기에 따라 충과 효를 적절히 변주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게 우리네 현실 세상이다. 신임 법무부장관이 "태산 같은 성은(聖恩), 정권 재창출로 보답한다"고 했다 하여 즉각 목이 잘렸다. 지금 어느 때인데 '충성서약'이냐는 얘기다. 그러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덕목은 무엇인가? 이로 보건대 완적의 '지신' 같으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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