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巫歌)인 '성주풀이'에 "백목지장(百木之長)이요 만수지왕(萬樹之王)"이란 나무 얘기가 나온다. 이 나무로 집을 짓고 성주풀이를 해야 가운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고 있는데, 무슨 나무인가?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 우리 강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흔하디 흔한 소나무다. 흔하긴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렇게 소나무를 모든 나무의 으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현대의 시인 서창우가 "소나무는 씩씩하다/ 봄에도 죽지 않고/ 여름에도 죽지 않고/ 가을에도 죽지 않고/ 겨울에도 죽지 않고/ 소나무는 씩씩하다"고 노래한 것처럼 우리 옛 사람들은 소나무를 대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에 넣어 그 씩씩한 생명력을 높은 덕성으로 여겨 왔다.

소나무처럼 '백목지장 만수지왕'으로 기림받지는 않지만 "생즉천년(生卽千年)이요 사즉천년(死卽千年)"이라 칭송받는 나무가 있는데, 두루 알고 있듯 이 나무는 주목(朱木)이다. 주목에 대한 인간들의 흠모는 그 모양의 아름다움에도 기인할 터이나 사실은 말 그대로 적어도 생사를 건너며 전후 2000 년은 족히 버티는 그 장수(長壽)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옛날에 '삼국지'의 촉나라와 위나라의 경계인 검문관(劍門關)에 이르는 길 취운랑(翠雲廊) 300 리 길에 측백나무 10만 그루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지금도 8000 그루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헤아리면 이 나무들의 수령이 자그만치 2300년이나 되니 긴 생명력으로만 보면 측백나무는 주목에 넘는다.

하지만 태백산 등지에서 자생하는 등 강원도적 상징성으로 보면야 '만수지왕'인 소나무를 제외하고 주목에 비견할 나무로 또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산림조합 강원지회가 태백산을 비롯하여 설악산 치악산 두타산 화악산 대관령 등 강원도 명산에 주목을 심는 행사를 벌였다. 새로 식수된 천년수 주목과 함께 백두대간 자연생태계의 천만년 영생을 기대한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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