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얼굴, 정부의 고위관리가 이상스레 촌스런 모자를 쓰고 탄광촌 같은 델 찾아가서 그곳 아낙네들과 악수를 하는 경우, 그 관리는 돌아가는 차 속에서 다 잊을 게 뻔한데도 자기네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보고 들어주는 게 황공해서, 그 관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수줍게 웃는 얼굴, 바로 그 얼굴들은 언제나 닮아있어서 그것이 모내기하는 논둑이든, 산동네 빈민촌이든, 탄광이든 항시 같은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강원도출신 작가 한수산의 소설 '욕망의 거리'에 나오는 얘기다. 이 구절 때문에 한수산은 제주도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어디론가 끌려가서 '우박처럼 쏟아지는 폭행'과 고문을 당했고 마침내 기약도 없이 일본으로 떠났다. 1980년대 초였다.

진시황은 중국 천하를 통일하자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도입해 군현제를 확립하고 전국을 몸소 시찰했다. 새로운 통일국가의 통치자로서 그 위엄과 권력을 방방곡곡에 과시함으로써 통치력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이었다. 15년만에 망한 통일 진왕조를 이어 한제국을 세운 고조 유방도 중앙정부의 통치체제가 수립되자 곧 국토 순방길에 올랐다. "큰 바람이 일어나 구름을 날린다/위력이 나라안에 떨쳐 고향에 돌아왔노라/용맹한 인재들을 얻어 나라를 지켜야 하리" 국토 순시 길에 고향을 찾은 유방은 그렇게 노래했다. 진시황이나 한고조의 국토 순시는 창업을 이룬 후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기도 했다.

대권을 향해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이른바 대선주자들이 도내 가뭄피해해 지역을 잇따라 찾아와 농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당차원 또는 정부차원의 지원도 약속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을 맞는 농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마른 들녁에서 공무원의 브리핑을 받고 걱정스런 낯빛으로 악수를 청하는 그들의 정치적 속내를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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