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시인 화가들이 화를 내며 현실간섭을 하는 것은 분명히 화제감이다. 소설가 이외수가 문화예술탄압 시민대책 위원회 대표가 돼 버드나무 아래서 성명서를 낭독하던 모습은 화제성을 넘어 "한 컷 짜리 전위예술이었다"고 하는 사람까지 나 올 정도니까. 홍천강에서도 예술인들의 집단항의가 있었다. "제2의 양수리 반대, 수리재(水里齋)를 지켜라"는 항의 문건에 춘천, 홍천 문화예술인들이 집단서명을 한 것이다. "예술인들 요즘 왜 이래?"하며 궁금해하는 쪽은 시민이다.

홍천강 사건의 전말을 잘 음미하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홍천군 서면 마곡리 산 114-1번지는 지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임야'이다. 그러나 진짜는 강변이고 장마가 지면 강바닥이다. 어떻게 강바닥이 산이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법적으론 하천에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지목이 임야면 진짜 강바닥이라도 문제될 게 없다. 3층 짜리 건축허가는 그렇게 난 것이다. 법에 저촉 안 되면서도 하천에 집을 짓게 했다면, 대단한 행정 융통성일 것이다. 그러니 "왜 건축허가를 내줬느냐"는 항의에 "법대로 하라"고 응수하는 모양이다.

'제2의 양수리를 반대한다'고 하니까, 더 답답해하는 것 같다. "양수리 한번 가 봐. 텅텅 빈 강변을 어떻게 멋있게 가꿔 놨나. 그걸 반대해?" 그러니 하천 집짓기가 '당신들이 바라마지 않던' 기막힌 행정융통성 아니냐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춘천에서, 홍천강에서 주민이해관계를 백 삼은 시장·군수와 신생 문화권력이 충돌하는 두 사건 해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인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세상의 '감성파괴'이고, '문화파괴' 행위이다. 급기야 획일화 사회로 회귀하길 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도 어느 한쪽엔 사고가 매우 자유스럽고 건강한 집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咸光福 논설위원
hamlit@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