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끔거리며 내리는 비가 감질나면서도 반갑다. 석달 이상 마른 땅을 적시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시든 잎사귀에 당장 생기를 돌게하니 감질은 나도 단비임엔 틀림없다. "함양성에 아침 비 내려 겨우 마른 먼지 적실 정도지만/객사 앞 버드나무 새롭게 푸른 빛" 당나라 시인 왕유가 노래한 그런 비다. 저 고려의 시인 정지상이 읊은 싯귀 "비 그치자 긴 방죽엔 풀빛 다시 살아나(雨歇長堤草色多)"에서 느껴지는, 대지를 흠뻑 적시는 비가 아니다. 그래도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라 감로수처럼 달다.

비는 농경민족의 사활을 좌우한다. 오랜 농경생활에 젖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비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였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시기나 비내리는 모양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 봄비 장마비 가을비 겨울비, 안개비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 장대비, 그리고 한바탕 퍼붓고 나서 무지개를 띄우며 시침떼는 소나기도 있다. 저쪽엔 해가 비치는데 바람에 실려가는 엷은 구름이 잠깐 뿌려대는 여우비도 있고.

봄비는 잠비요 가을비는 떡비라고도 했다. 봄비다운 봄비 한번 내리지 않고 석달 가뭄 속에 봄이 지나갔다. 시든 꽃잎이 애처롭고 축 쳐진 나뭇잎 사이로 마른 바람이 불어와 갈증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가슴을 있는대로 태웠다. '타는 목마름으로' 비를 기다려온 마음들이라 밤사이 후두둑거리며 내리는 빗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슴 조이며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순간 빗소리가 멎고 안타까움만 더해졌다.

"비가 옵니다/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비가옵니다/뜰 위에 창밖에 지붕에/남모를 기쁜 소식을 전하는 비가 옵니다" 주요한의 '빗소리'를 들으며 마른 가슴을 달랜다. 제발 한 사흘만이라도 비가 더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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